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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최고 발명품도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도 내팽개치는 대한민국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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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복재 시사칼럼
기사입력 2009-07-02

 

'서울 디지털포럼 2005'에서는 미국의 앨 고어(사진) 전(前) 부통령이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디지털 혁명은 커뮤니케이션 부문에서 인쇄술에 이어 세계에 주는 두 번째 선물"이라고 정의하며 "서양에서는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당시 교황 사절단이 조선을 방문한 이후 얻어온 기술이다"라고 밝혀 전 세계적으로 흥분과 충격을 주었다.

2005년도 9월이니 4년째로 접어든다. 그렇다면 이 4년 간 우리나라 정부와 학계에서는 무엇을 했을까? 그리고 당시 1400년대에 로마교황청의 교황사절단이 조선의 중국을 정말로 방문했을까? 이 두 가지 물음에 우리는 답을 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구텐베르크는 독일의 활판 인쇄 발명자(?1398~1468)이다. 요즘 책들은 컴퓨터로 인쇄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쇄기로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듯이 유럽에서 인쇄기의 출현은 여러 면에서 문명의 발전을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물론 서양 사람들은 독일의 발명가 구텐베르크가 문명에 혁신을 가져온 인쇄기를 최초로 세상에 소개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그림자 뒤에 숨은 진실은 이동형 인쇄기에 사용하는 최초의 금속활자가 구텐베르크의 것보다 적어도 50년은 먼저 한국에서 발명되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구텐베르크가 중국으로부터 '자신의'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적절한 정황적 증거도 있다. 요컨대, 한국의 존재는 오늘날 서양에 질 좋은 자동차를 서양에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지난 1000년 동안 서양의 발흥에 기여했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존 M. 홉슨John M. Hobson의 “서구 문명은 동양에서 시작되었다(The Eastern origins of Western civilisation)”의 서문 중에서)

구텐베르크가 조선을 방문한 친구들(당시 교황의 사절단)으로부터 인쇄술을 배웠다는 것이 사실이었다. 구텐베르크가 처음으로 인쇄술 개량을 시작한 것이 1434년에서 1444년 사이이고, 첫 성서발행이 1452년쯤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구텐베르크가 30대 중반에 조선의 인쇄기술자를 만나 당시 조선의 금속활자 기술을 전해 받고 그 금속활자 기술로 당시 사회적으로 기득권을 유지했던 종교의 성서를 발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 현존 최고의 금속활자인 `직지`가 만들어진 곳, 청주 흥덕사지   이성민 기자



세계 최고의 발명품인 금속활자는 언제 만들어 졌을까?

우리 학계에서는 고려시대인 13세기에 금속활자가 이루어졌다고 보고 있으며, 그 근거로 l297∼98년경에 간행된 것으로 보이는 《청량답순종심요법문(淸凉答順宗心要法門)》이 고려대학 도서관에 남아 있는데, 그 한 면이 금속활자로 찍혀 있다. 당시는 원나라가 지배하고 있던 때여서 이 기술이 원나라에 전파되었고 아라비아 상인들이 이를 본받아 종이의 제조법과 더불어 서양으로 전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도 고려의 금속활자가 세계 최초의 것임이 세계적으로 공인된 계기가 된 것은 파리의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 말의 사주본(寺鑄本)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 공개되고서이다. 이 책은 1377년(우왕 3) 충청도 청주(淸州) 밖의 흥덕사(興德寺)에서 주자(鑄字)한 금속활자로 찍은 것임을 발문에서 밝히고 있다. 당시 고려에는 서적점(書籍店:書籍院)이라는 중앙관서가 있어 주자(鑄字),인서(印書) 등을 관장하였는데, 중앙관서가 아닌 한 지방의 사찰에서 이런 금속활자를 만들어 인쇄하였다는 사실은 당시 서적점에서는 이미 금속활자에 의한 인쇄술이 상당히 발달하여, 지방의 사찰에까지 그 기술이 파급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렇다면 ‘직지’란 무엇인가?

▲ 프랑스에 보관중인 세계기록유산 '불조직지심체요절'.    

흔히 교과서에 ‘직지심경’이라고 등장한다. 정확한 명칭은「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다. 인류의 역사 문명의 가장 위대하다는 직지심체요절의 전체이름이라는 뜻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직지는 백운화상이 75세였던 고려 공민왕 21(1372)년에 노안을 무릅쓰고, 선도(禪徒)들에게 선도(禪道)와 선관(禪觀)의 안목을 자각(自覺)케 하고자 함은 물론, 선풍(禪風)을 전등(傳燈)하여 법맥(法脈)을 계승케 하고자 저술한 것으로서, 그 제자 석찬과 달담이 비구니 묘덕의 시주를 받아 청주 흥덕사에서 1377년 7월에 금속활자로 인쇄하였다.

직지는 세계 최초 최고의 금속활자로 판명이 되었으며 편리하고 경제적이고 교정 또한 쉽게 하여줌으로써 책의 신속한 생산과 대량생산을 하는 초석을 다지는데 막대한 가치가 있다. 또한 활자 인쇄술에 기름먹을 발명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직지의 인쇄 기술은 위에서 밝힌바와 같이 동양의 문화혁명을 일으키며 이를 본받아 아라비안 상인들을 통해 유럽등지로의 전파가 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는 혁신적인 실용성과 인류의 문화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는 일대 사건이다.

직지는 2001년 9월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그런데 이 위대한 문화유산인 직지는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왜 프랑스까지 갔는지 그 경로를 추적하면, 대한제국 말 고종황제때 주한 불란서대리공사로 서울에서 근무한바 있는 꼴랭 드 쁠랑시(Collin de Plancy)가 수집해갔다고 한다. 그 후 골동품수집가였던 앙리베베르(Henry Vever)에게 넘어갔으며 그가 1950년에 사망하자 유언에 따라 프랑스국립도서관으로 이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책은 상·하 2권으로 되어 있으나, 현재 하권만이 유일하게 프랑스에 소장되어 있으며, 하권은 39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째장은 없고 2장부터 39장까지 총 38장만이 보존되고 있다.

이 대목에 이르러서는 아직도 대한민국은 좌·우 이념대립과 사상문제, 일재잔영들이 사라지지 않는 채 찢겨진 민족구심점이 흐물흐물해져 분산된 힘을 한탄할 수밖에 없다. 민족적 문화적 소신을 가진 정치인, 정부 관료들이 거의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참으로 안타깝다. 우리의 것을 우리가 찾을 수 있는 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술은?

▲ 구텐베르크 42행 성서    

1452∼56년 사이에 구텐베르크가 찍어낸 ‘42줄의 성서’(우리의 8만대장경판 같은)는 그 인쇄술이 짧은 시간에 꼭같은 책을 많이 찍어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서구사회에서는 획기적인 일이었고, 싼 값으로 일반인에게 지식을 전파하는 속도를 가속화하였다. (현재 미국의 워싱턴에 있는 정부의 귀중문서 보관금고에는 이 "구텐베르크의 성서"가 보관되어져 있어서 만약 핵전쟁 등이 발발할 경우, 자동으로 지하벙커에 있는 금고로 이동 및 보관되어지게 된다고 한다.) 이 당시 유럽에는 시민사회가 이룩되어 있었으므로 더욱 시기를 잘 맞추었을 뿐만 아니라, 기업화를 통하여 상업성이 있었던 점이 한국에서의 금속활자 발명 및 인쇄술 발달과 다른 점이었다.

독일의 구텐베르크도 놋쇠에 글자마다 거푸집을 새겨서 활자를 부어 만들었고, 인쇄에 있어서도 기계로 눌러 찍는 법이 고안되고, 금속합금(金屬合金)에서도 주석과 납을 섞은 활자쇠가 만들어져 인쇄술을 더욱 발전시키게 된 것이다.

로마 교황의 사절단의 구텐베르크의 친구들이 1430년경에 조선을 방문 했을 때는 세종시대인 것이다. 이전 1403년 태종 때 계미자(癸未字)의 주조가 이루어 졌고, 세종이 왕권을 물려받아 즉위한 후 계미자를 개량하여 1420년에 경자자(庚子字)를 주조하였고, 이후 태종으로부터 왕권을 인수받은 세종은 계미자를 개량하여 즉위 2년 후인 1420년에 경자자(庚子字)를 주조하였고, 이후 1434년(세종 16년)에는 자체가 가장 아름답다는 갑인자(甲寅字)를 만들었다.

(계미자=태종이 1403년 계미년에 주자소를 처음으로 설치하고 신하들에게 구리를 헌납 받아서 몇 달에 걸쳐 <十七史略古今通要(십칠사략고금통요)> 등 구리활자로 서적들을 대량으로 인출하기 시작한다. 이는 고려시대 금속활자가 발명된 170년 뒤지지만, 여전히 구텐베르크를 훨씬 앞서는 금속활자본이다.)

이 인쇄기술의 개량으로 동양에서는 귀족중심에서 일반인들에게 널리 보급되게 되어 활자혁명과 인쇄혁명이 일어난 때, 교황사절단이 이 상황을 보고난 후 충격을 받아 새로운 움직음으로 부산물들을 가져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구텐베르크 친구들이 조선을 방문했는지의 사실여부는 세계 역사상 아주 중요하다

문헌적으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의 말을 근거로 찾아봐야만 한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구텐베르크의 인쇄혁명이 우리나라에서 직수입됐다는 것이 되는 것으로 이는 세계사에 일대 경종을 울릴 커다란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를 추적하기 위해서는 스위스의 인쇄박물관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 나라의 학계와 정부 관료가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도대체 역사적 문화적 자긍심을 가지고나 있는지 아니면 국민들이 내는 세금만 축내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스위스 박물관과 정부와 학계를 중심으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어떤 경로로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추적합니다.]
 
 이 금속활자인 직지와 황우석 사건이 비슷하다고 하면 우격다짐일까?

 

「직지」는 현재까지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독일의 쿠텐베르크가 발명한 활자보다도 최소 60여년이나 앞서는 것으로 우리 조상들의 창의력과 얼이 담긴 자랑스러운 보물이다. 그런데 이러한 「직지」가 지금까지 알려져 왔던 것과는 달리 국제적으로 공인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국내의 어느 서지학자 분께서 이 책을 고증 당시에 국제적으로 공인이 될 것으로 믿고 말하였던 것인데 그간에 국제적인 공인을 받지 못한체 이것이 기정사실화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인지 국내에서는 국제적으로 공인이 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정작 세계의 주요 서지학 문헌은 물론 기네스북과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 또한 국가적 차원에서 외교적인 교섭 노력을 하여 반드시 이 책이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알려지길 바라는 바이다. 금속활자본 「직지」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모리스 꾸랑이 「한국서지」3책을 편찬하여 간행하고, 뒤이어 그 내용을 증보하여 1901년도 「한국서지의 부록」을 출판한 뒤에 수록됨으로써 비롯되었으나 그 실물과 내용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72연도에 "세계도서의 해"를 기념하기 위하여 국제전시회에 출품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으며, 당시에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였던 박병선 여사가 실물 사진을 국내에 가지고 들어와 국내 학자들의 고증을 거쳐 금속활자임을 입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직지의 하권 맨 끝에 "선광7년정사7월 일 청주목외흥덕사주자인시"라는 간기가 있어 교려 우왕3년(1377) 7월에 청주목 외곽 흥덕사에서 간행된 것을 알 수 있었으나 정작 「직지」를 간행한 흥덕사에 관한 근거가 전혀 없었다. 그러던 중 1985년 청주대학교박물관이 충청북도로부터 "청주운천지구 연당리사지문화유적"의 발굴용역을 받아 1985년 7월 20일에서 1985년 10월10일 사이에 실시한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흥덕사명이 있는 유물로써 본 절터가 바로 흥덕사가 있었던 자리임이 밝혀졌으며, 바로 그 자리에 1992년에 청주고인쇄박물관을 세워 찬란했던 인쇄문화를 알 리는 국민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최초의 금속활자가 한국에서 발명되었음에도 그 공로는 구텐베르크에게 빼앗긴 이유로, 사회적 역량 부족과 민족의 정체성을 잃은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체세포복제배아줄기세포를 세계 최초로 발명했다고 발표되었음에도 논문조작 등의 이유로 ‘황우석 사건’이 터져 결국  '사기꾼'으로 매도되어 흘러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훌륭한 발명품도 빼앗기고 있다는 말이 된다. 과학자의 실수를 자신들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인 이유로 그저 범죄자로 다루려는 인식과, 그런 한국의 상황인식을 이용한 유대자본가들의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욕이 맞아 떨어 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유대민족과 한민족 간의 총성 없는 전쟁’이 그것이다. 
 
금속활자는 한민족이 서양의 구텐베르크보다 약 200여년 빨리 만들어서 최고最古발명품 이라 우리가 자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직지는 구텐베르크보다 60여년이나 빨랐음에도 유럽에서 지난 최고最高의 발명품을 서양의 쿠텐베르크의 성서42행으로 뽑았다. 왜 일까? 생각해 보시라.

필자가 이 금속활자인 '직지'와 '체세포복제배아줄기세포'가 비슷하다고 하면 우격다짐일까? 황우석을 죽이려는 세력들은 줄기세포에 대해 단순하게 있냐 없냐 조작이냐 조작이 아니냐로 몰아갔다. 이것은 과학자의 실수, 아니 세계 최초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의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다. 발명은 시간의 문제이고 누가 더 빨리 만드느냐 하는 것이다. 줄기세포는 테크가 아니라 타임이다. 과학은 사회와 접목이 되어야 엄청난 힘을 발휘 한다.


종교적인 이유에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서, 아니 식민지배의 노예근성을 청산하지 못해서 우리는 스스로 민족의 우수한 인재와 능력을 내팽개쳐 버리고 있는지 살펴 보아야 한다. 그저 자신들이 믿고 따르는 종교 지도자와 정치인, 그리고 자기 밥그릇만 챙기려는 자들에 의해 민족의 정체성은 서서히 깔아 뭉개져가고 있는 것이다. [편집자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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