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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정통사(94)-삼일광복투쟁과 왜구들의 잔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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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세 역사전문위원
기사입력 2019-06-03

[플러스코리아타임즈=안재세 역사전문위원] 1919년 광무황제의 장례에 참석하기 위하여 전국각지에서 몰려 든 많은 사람들은, 31일 아침에 민족대표 33인이 요리집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곧 왜구들에게 체포당한 시간을 전후하여, 탑골공원에서부터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염원하며 독립만세시위에 들어갔다. 한민족역사상 찬연히 빛나는 독립운동의 금자탑중의 하나인 삼일광복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로부터 수개월 동안 전 대한국 영토는 물론 만주노령미주 등 대한국인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만세시위가 벌어졌고, 평화적인 만세시위자들에 대한 왜구들의 잔학한 탄압과 학살은 가히 발악적인 것이었다.

 

 

빠리강화회의에서 한일합방이 대한국인들의 지지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었다고 선전하려 했던 왜구들의 의도가 완전히 국제망신을 당하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기에, 왜구들은 그 보복으로 온갖 행패를 노약자들과 부녀자들에게까지도 자행했다. 다음은 왜구들의 행패에 대한 기록들이다.

 

"평안도 벽촌해변에서 생선 장사를 하는 한 젊은 부인을 왜구들이 독립군이라고 지목해서 칼로 찔러 죽이니 두 살 난 어린아이가 어머니를 부르며 슬피 우는 참경이 벌어졌다. 그날 밤 왜구들은 다시 그 마을에 침입하여 여학생들을 닥치는 대로 강간하고 민가는 전부 불 질러 버렸다."

 

"선천군에서는 한 노부인이 애국연설을 하자 왜구들이 달려들어서 칼로 입을 찢고 그 피를 주위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에게 뿌렸다. 평양에서는 왜구 소방대원 5~6명으로 구성된 한 부대가 평양병원 근처 대한국인의 집에 침입해서 여학생 2명의 머리를 쇠갈리로 찍어 끌어내어 전주에 결박해 놓고 왜경찰에 인도했고, 장대현 예배당에서는 주일학교 여교사가 왜구를 피해서 도망하던 중에 왜구 소방대원의 쇠갈리에 찍혀 뼈가 부러져 폐인이 되었다.”

 

서울의 여학생 31명은 다음과 같이 고문의 실상을 증언하였다.

 

"처음 감옥에 수감될 때는 무수하게 때린 후 옷을 벗겨 나체로 만든 후에 손발을 결박해서 마구간에 버려둔 채 추운 밤을 나체로 지내게 하고, 그 중 미모의 학생들을 왜구들이 끌고 가서 교대로 강간한 후에 새벽이 되면 마구간으로 다시 끌어다가 버렸다. 심문할 때는 십자가를 배열해 놓고 너희들은 예수교 신자이니 마땅히 십자가의 고통을 받아야 된다고 하면서 여자 고등보통학교 학생 노영열을 십자가위에 나체로 눕게 하고 뒤에는 숯불을 피워놓고 쇠줄을 달구어 유방을 34회 난자한 후에 결박을 풀고 칼로 사지를 찢으니 유혈이 낭자하였다."

 

"다시 다른 십자가에 옮겨 놓고 머리와 사지 등 다섯 군데를 결박한 후 고약을 불에 붙여 머리털과 음문과 좌우겨드랑이에 붙여 냉각시킨 후 갑자기 힘껏 잡아 뜯으니, 털과 살이 함께 떨어져 선혈이 땅에 가득한 것을 보고 왜구들은 손뼉을 치며 크게 웃어대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 중에 소위 우두머리라는 자가 네가 또다시 만세를 부르겠는가?’라고 묻는 데 대해서, ‘독립이 달성되지 못하면 죽더라도 계속하겠다.’고 대답하자 다시 감금하고 수일동안 음식을 주지 않고 굶기다가, 3일째 되는 날 다시 악형을 계속하였다."

 

"왜구 2명이 좌우에서 여학생의 손을 한 쪽씩 붙들고 대나무침으로 손톱 밑을 질러도 여학생들이 도리어 왜구들을 꾸짖자, 더욱 노한 왜구는 칼을 뽑아 여학생의 입술을 베려고 한 즉, 상관되는 자가 얼굴에 나타나는 상처는 내지 말라고 제지하여 부득이 옷을 입히고는 엄중히 질책한 후 석방하였다."

(이것은 그래도 목숨이라도 부지할 수 있었던 경우의 운 좋았던 예중 하나에 불과함)

 

부녀자들에게까지 이러한 만행을 식은 죽 먹듯이 한 왜구들이 남자들에 대해서는 어떠했겠는가 하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 만세시위를 벌이다가 왜구들에게 잡히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니, 광복투쟁가들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왜구들이 유럽지방 암흑시대의 광신자들이 마녀사냥 때나 쓰던 반인류적인 악랄무비한 고문을 자행했음을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은 다음과 같이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음모사건의 명칭 하에 감옥에 구류되야 주리 틀고, 목에 칼을 채우며, 단근질채찍질전기질바늘로 손톱 밑 발톱 밑을 쑤시고, 수족을 달아매고, 콧구멍에 물 붓고, 생식기에 심지를 박는 모든 악형, 곧 야만 전제국의 형률 사전에도 없는 갖은 악형을 다 당하고 죽거나, 요행히 살아서 옥문에 나온대야 종신 불구의 폐인이 될 뿐이다

 

강도 일본이 우리의 생명을 초개로 보아, 을사 이후 십삼도의 의병 나던 각 지방에서 일본군대의 행한 폭행도 이루 다 적을 수 없거니와, 즉 최근 삼일광복투쟁이후 수원선천 등의 국내 각지부터 북간도서간도노령연해주 각처까지 도처에 거민(居民)을 도륙한다, 촌락을 소화(燒火)한다, 재산을 약탈한다, 부녀를 능욕한다, 목을 끊는다, 산 채로 묻는다, 불에 사른다, 혹 일신을 두 동가리 세 동가리로 내어 죽인다, 아동을 악형한다, 부녀의 생식기를 파괴한다 하여 할 수 있는 데까지 참혹한 수단을 써서 공포와 전율로 우리 민족을 압박하야 인간의 산송장을 만들려 하는 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한국인들이 거주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지 만세소리가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으며, 평화적 시위에 대한 야만적 대탄압에 직면하여 평화적인 방법으로는 어떠한 수를 쓰더라도 결코 광복을 이룰 수 없음을 뼈저리게 재확인한 대한국인들은, 스스로의 실력으로 광복을 쟁취하기 위하여 주저하지 않고 무력항쟁과 의열투쟁을 선택하였다. 그리하여 두 나라 국민들 간의 대결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살육전으로 치달아 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곧 무오독립선언의 무장투쟁노선이야말로 대한국인들에게 남은 유일한 광복투쟁 방략임을 확인시켜 주는 결과를 가져왔고, 대한국인들은 만주지방에서 펼쳐지고 있던 항일전선으로 속속 모여들어 급속히 그 세력을 확장해 갔다.

 

삼일광복투쟁의 한 큰 계기가 되기도 했던 소위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했다는 미국은 완전한 방관으로 일관했으니, 미국 국무성은 공식성명을 통하여,

조선 문제에 대해서 미국은 영국이 그 식민지 문제에 대해 (영국 당국이) 하는 것과 같은 태도를 취한다. 조선 문제는 순전한 일본의 내정 문제이므로 우리 필리핀에서 폭동이 일어났을 경우와 같다. 폭동 진압을 위해 일본이 취한 태도에 대해 여러 가지 비판적인 보도가 있지만 이것은 대단히 의심스럽다. 국무성이 입수한 정보로는 일본이 특히 잔인하고 엄한 조치를 취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라고 논평했던 것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태도도 완전히 일제의 눈치를 살피는 것으로 일관했는데, 일제가 서울주재 프랑스 총영사관의 통역 이종엽을 삼일광복투쟁 참가 용의로 기소한 후 그를 사면하는 조건으로 상해의 프랑스조계 안에서 일본 관헌이 독립운동를 체포할 수 있는 자유(?)’를 요구했는데, 그에 대하여 주일 프랑스대사는 일본외상에게,

 

프랑스 관청에 근무하는 자에 대해서 그러한 처분을 내리시는 데 대해 프랑스정부가 감사로써 환영하는 바이며, 또 일본관헌이 상해의 프랑스조계에서 지당한 요구를 수행하는 일에 협력하는 프랑스 정부의 모든 노력과 이 관대한 처분과는 정비례해야 한다는 것은 물론입니다. 본 대사는 각하의 호의적 주선을 기대하면서 최고의 경의를 표하는 것을 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19191027

라는 내용의 공한을 보냈다.

 

그 후 상해의 프랑스조계 안에서 모처럼 조직된 상해임시정부에 대한 일제의 압력은 급속히 진전되었고, 프랑스조계 당국도 일제의 요구대로 임시정부를 추방시키기까지는 못했으나 그 대신 온갖 간섭을 하는 등, 열강의 정책은 대체로 일본과 협력 내지 지지를 기본 방침으로 하고 있었다.그러나 상해임정 및 구미각국에서 활동하던 외교지상론자들은 이러한 미국과 프랑스 및 그들과 다를 것이 별로 없던 구미 각국과 쏘련 등의 후원을 얻어서 독립을 얻으려는 가망 없는 노력을 계속해서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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