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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숨은 딸'-2] 딸의 존재를 모르다가 20년 후 만난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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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복재 소설가
기사입력 2014-08-08


[문학=플러스코리아타임즈 리복재] 제2편. 가물거리는 기억 저편에 잊혀져가는 흔적으로 지난날이 되어버린 그때가 언제였던가.
그의 시선 속으로 희뿌연 안개가 멍울멍울 뒤덮기 시작했다.

병진은 대학에 입학하여 바다같이 넓고 하늘처럼 고운 마음씨를 가진 미선을 꼭 안아주었던 일.
그녀도 그를 끌어안으며 미래의 소박하고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기뻐했던 일.
그리고 두 사람은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살자며 시골에 있는 병진의 어머니는 그녀가 자주 안부전화를 드리고 찾아가 일손을 도와주고, 미선의 어머니는 그가 자주 찾아가 인사를 드렸던 일들이 불현듯 떠 올렸다. 
양가에서도 이런 두 사람을 아들과 딸로 받아들이고, 어릴 때부터 둘의 사귐과 성장과정을 통해 둘도 없는천생연분이라며, 2년 후엔 결혼을 시키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나누었던 사랑, 소박하고 평범하게 살고 싶은 행복한 꿈은 결국 80년 전두환 일당이 권력의 마이크를 차지하기 위해 광주에서 일부러 일으킨 사건으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1980년 5월의 봄이었다.
광주에 전두환 일당의 명령을 받고 계엄군이 저지른 있을 수 없는 유혈극에 대해서 학생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번져 나갔다.
계엄군이 광주에 가서 학생과 시민들을 무차별 살생하는 천인공노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전두환 일당은 계엄군에게 광주를 포위하고 토끼몰이 식으로 어린이부터 학생, 임산부, 주부와 시민, 나이든 노인네들을 불문하고 무조건 찌르고 때려죽이라고 명령했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정부와 언론에서는 그런 광주시민을 폭도로, 빨갱이로, 고정 간첩으로, 불순분자들이 소요와 폭동을 일으키고 있다고 국민들을 속였다.

광주에 내려가지 못했던 병진은 광주의 진실이라도 알리기 위해 평화혁명단에 가입했다.
단장은 고려대 4학년인 정보석이었고 58명의 단원이 있었다.
그러나 병진과 같은 의기가 충천한 학생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밤을 지새우며 전두환 일당의 만행을 알리는 전단지를 찍어내고, 아침이면 몸 속 깊숙한 복부에 전단지를 넣고 역이나 터미널 등 사람이 붐비는 곳으로 가서 주위를 살피다 수십 장 분량의 전단지를 한웅큼씩 뿌리고 도망을 쳤다.
즉, 그들은 레지스탕스가 되어 갔다.
그들은 20세기 시베리아 얼음심장을 녹여버린 이스크라 활자를 생각하며 광주의 진실이란 전단지를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죄 없이 죽어간 넋들을 달래주고 싶었다.
산자로서의 몫을 다하기 위해 서울 시민들에게 광주의 진실을 알려야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혁명단은 외국 특파원들과 접촉하여 광주에서의 계엄군들이 저지른 만행을 사진과 영상을 보며 알아냈다.
여고생의 유두를 자르고, 자궁을 도려내고, 임산부를 죽여 태아를 끄집어내 적 괴수를 잡은 양 총검에 꽃아 높이 치켜들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대검과 총 개머리판으로 처참하게 짓이겨 죽이는 끔찍한 자료를 보면서 몸서리치며 전단지 제작에 몸을 아끼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뿌릴 때 한번 주워 보았던 시민들은 혁명단원의 모습을 알아보고는 놀란 토끼 눈으로 물었다.

"이게 진짜 사실이란 말이오?" 

그러면 대답대신 고개를 끄떡이고는 순식간에 자리를 피해야 했다.
혹시 대화를 길게 했다간 공안기관원이나 형사에게 잡힐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집행부는 그가 비록 신입생이었지만, 전단지 작업에 몸을 사리지 않는 모습을 보고 리더그룹에 넣어 주었다.
결국,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속담처럼 병진을 비롯한 혁명단원들은 알 수 없는 곳으로 잡혀 들어갔다.

처음 잠을 안 재우고 그들의 구미에 맞게 조서를 꾸미고 취조하던 요원들은 병진이 지쳐 쓰러지자, 물을 끼얹어 정신을 차리게 한 다음 못 박힌 몽둥이 구타 등 본격적인 구타와 고문을 자행했다.
병진을 취조한 사람은 일제경찰과 친일경찰들보다 더 악랄하게 취조하는 이근안 고문기술자였다.
그자는 각목에다 못을 박아 못 창끝이 나오게 하여 그의 온 몸을 때렸다.
병진은 몸에 쑥쑥 들어 오는 못의 공포에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그래도 그들의 요구를 거부하자, 이근안은 병진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욕조에 담긴물에 고개를 쳐 박아 놓았다가 숨이 끊길 때쯤에 머리를 들어 올리는 물고문을 자행했다.

그런데 무슨 지시가 떨어졌는지 혁명단원에게 반성문만 쓰라는 것이다.
단원은 형식적으로 잘못했다는 요지로 짤막하게 썼고, 다음 날 풀려 나왔다.
전두환 일당은 광주사태의 연장선상으로  병진과 평화혁명단을 간첩단 사건으로 만들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단원들은 그들의 행위를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확실한 정보나 증거가 없었다.
몸을 추스르고 난 다음 비선으로 연결된 단원에게 전하고, 1대1 방식으로 연락체계가 잡혀 제3의 장소에 모이자는 약속을 하고 각자 집으로 흩어졌다.

그가 집에 도착하자 부모는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었다.
그가 평화혁명단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전두환일당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다.
소식을 듣고 달려 온 미선은 병진을 안고 몇 날을 흐느껴 울었다.
병진은 자신 때문에 부모가 죽었다는 자학과 슬픔보다는 국민과 나라를 위해서 부모 잃은 슬픔은 사치라고 생각하고 다시 혁명단에서 활동했다.
그의 시뻘겋게 충혈 된 눈은 잔학한 그들의 실상을 낱낱이 알려야만 한다는 사명감으로 불탔다. 



그런데 미선도 혁명단에 가입해 달라고 애원하여 함께 활동했다.
죽어도 사랑하는 병진과 죽겠다는 미선의 일념이었다.
그녀도 그와 못지 않게 열과 성을 다해 전단지를 뿌리고 차츰 혁명단원이 되어갔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하는 밤을 보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여자와 남자라는 존재감을 밝힌 아름다운 밤이었다.

며칠 후였다.
그녀가 잠시 외출 할 때 괴한을 만났다.
그 괴한은 미선을 잡고 협박했다.
애인인 병진과 헤어지지 않거나 혁명단을 탈퇴하지 않으면, 병진의 부모처럼 그녀의 부모는 물론 미선도 죽게 된다는 말을 협박공갈처럼 늘어 놓고 사라졌다.
미선의 말을 들은 그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결국 병진은 지도부와 상의하여 야심한 밤을 이용해 미선의 눈을 가리고 알 수 없는 도심에 내려놓고 서울로 돌아와 아지트를 옮겨 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헤어지게 된 병진과 미선.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은 헤어져야만 했다.
그녀와 그녀의 부모, 그와 혁명단원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때의 일들을 떠올리면서 병진은 연신 술을 들이켰다.
미선은 몇 번이고 같은 말을 해댔다. 

“잊지 않았지?”

아직도 생생한 그 기억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술과 추억을 마시며 그녀의 하늘 같은 마음과 호수 같은 눈 속에 갇혔다.
그녀를 만나면 술술 풀어낼 이야기가 많았다.
그러나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사귀어 온 그들의 사랑은 차마 아름다워서, 그녀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사랑이어서, 차마 입으로 말 할 수는 없었다.
그 사랑을 입밖으로 내뱉으면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병진의 가슴을 묵직하게 만들고 있었다.

“정말 우리가 이렇게 만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 했어. 행복하지? 난 홀로 지내 왔는데.”

병진은 그녀가 자신 때문에 홀로 지내왔다고 생각했다. 
심장 저 밑바닥에서 치밀어 올라오는 핏덩이 같은 덩어리가 목을 옥죄고 있다는 중압감으로 더더욱 미선에 대한 한 없는 애정과 미안함이 동반되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왜 혼자 사는지 궁금했다.

“난 결혼해서 남매를 두었어. 그런데 왜 혼자 지내?”

“나 결혼할 수 없었어.”

다시 그의 벌건 눈이 또 젖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열기가 오른 손으로 병진의 눈물을 닦아주고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녀는 그의 눈을 바라보다 물밀듯 몰아치는 연민에 그를 와락 껴안으며 흐느꼈다.
일년을 울어도 한의 세월을 살아온 두 사람의 아픔을 죄다 쏟아낼 수는 없었다.

며칠 후,
미선은 자신의 집으로 병진을 이끌었다.
그런데 현관문을 열어 주는 이가 병진과 만나기로 약속한 그 아가씨가 아닌가.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그 아가씨가 병진에게 무작정 안기는 게 아닌가.
병진은 그런 아가씨를 보며 놀라고 있었다.

“아니, 아가씨가 어떻게······”

바로 꿈에도 그리던 미선을 만난 그날 오후 6시에 창경궁에서 한 달 전에 만나기로 했던 그 아가씨.
그는 아가씨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허둥댔다.
그리곤 미선에게 물었다.

“혼자라면서, 누구야?”

“우리 딸이야. 예쁘지?”

 미선에 말에 병진은 한참을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 폭탄을 맞은 듯 그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딸이면 그냥 딸이지 우리 딸은 무엇인가?·······’ 

그 사이 딸은 시원한 물을 가져와 아버지에게 건네 주었다.
정신을 차린 그는 좀더 확실히 알고 싶었다.

“결혼 안했다면서 무슨 딸이야?”

“우리 사이에서 난 딸. 그래서 난 결혼을 할 수 없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는 알 수 없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부르르 몸을 떨며 딸을 힘껏 끌어안고 왕방울 같은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딸도 병진의 가슴을 더욱 파고들며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아버지 앞에서 아버지라 부르지도 못하고 돌아서야 했던 딸은 지난 세월을 떠올리며 보상이라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병진을 더욱 끌어 안았다.
그 리움의 세월이 장장 20년이 되었다.
 
“아버지·······”

병진은 딸이 중학생 때부터 병진이가 자신의 친부라는 걸 알고 있었다고 미선의 고백처럼 하는 말을 듣고 말았다.

이병진.
미선은 그 이름 석자를 가지고 전국을 찾아 헤맸다.
결국 그를 찾았지만 그의 앞에 나설 수는 없었다.
그가 결혼해 아이 둘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군대에 끌려가 고문 등 모진 고통으로 반병신이 되어 군에서 나와 형제지간은 물론 모든 친척과 지인들과 연락을 끊고 산자로서의 죄스러움으로 산 속 절에서 혼자 지내고 있을 때,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여성은  병진의 처절한 사연을 그 절의 스님을 통해 알게 되었고, 병진을 간호하여 반드시 살려내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그에게 살아야 한다고 삶의 의지를 북돋아 주었다.
그녀의 도움으로 건강을 회복하고 결혼하게 되어 가정을 일구게 되었던 병진이었다.

미선은 차마 그런 병진의 가정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전두환 일당에게 잡혀 모진 고통에 죽어가는 그를 살려 준 병진의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그래서 병진과의 사이에서 생겨난 딸을 홀로 키우기로 결심한 그녀였다.
모진풍파에도 병진과의 사랑을 나누었던 때를 반추해내며 추억의 아름다움으로 견뎌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 대한 애타는 질문과 그리워하는 딸이었다.
미선은 딸의 아픔을 알기에 중학생이 되자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서 말문을 열었다.

“아버지를 만나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겠다고 약속해. 그러면 알려줄게.“

“엄마,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사생아도 아닌데.”

“네가 아버지라고 말하면 아버지와 그 가족은 어찌 되겠니? 네가 크면 아버지와 나를 이해하게 될 거야. 그때까지만 이라도 아버지라 부르지 말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고만 와야 돼? 약속을 지키겠다고 하면 알려 줄게.”

딸은 일절 말도 하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밥도 먹지 않았다.
며칠 후,
딸은 결심이 썼는지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미선은 딸에게 아버지의 소식을 말해주었다.

딸은 그때부터 친부가 보고 싶으면 회사에 찾아가 몰래 훔쳐보아 왔던 것이다.
치밀어 오르는 아버지에 대한 보고픔으로 달려가 멀찌감치 떨어져 훔쳐보며 위안을 삼았던 딸.
그런 날이면 밤새 펑펑 울었던 딸.
그 사춘기 소녀의 아픔을 세상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

딸은 성인이 된 후, 친부와 좀 더 가까운데서 바라보며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아가씨의 얼굴을 보면서 그가 느낀 것은 20년 전 헤어진 미선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에 그도 아가씨를 눈여겨 보아왔던 것이다.


“엄마, 이제는 아버지를 만나 봐. 아버지도 엄마가 무척 보고 싶어 하실 거고, 또 아버지의 부인도 이해해 줄 거야. 아버지를 살려내신 분이잖아. 응?”

“····”

미선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기를 1개월 가까이 고민만 했다.
병진과 만난다면 그의 부인도 알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으로 인해 단란하고 행복했던 가정이 깨져 그의 자녀들이 상처를 입을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어서였다.
그런 상황이 발생되지 않을까 하는 모성본능이 든 그녀였다.
즉, 인간의 가치와 존엄과 권리를 지키고 실천하며 사는 인간본성을 지닌 여성이었다.
 
"엄마, 평생 아버지를 그리워 하느니 직접 만나서 그리움을 삭혀봐. 나 안보는데서 아버지를 그리며 아픔을 견뎌내는 거 알아. 나와 아버지가 만나기로 한 날 엄마가 만나 봐. 그래야 나도 마음놓고 공부도 하고 좋은 남자 만나서 혼인도 할게 아니야. 엄마가 그러면 나도 아버지를 원망하게 되고 그 원망때문에 어찌될지 모르잖아. 20년이나 흘렀어. 그리고 아버지를 살려내신 분이라면 엄마와 아버지가 만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거야. 그니까 원망도 아픔도 남지 않도록 만나봐. 나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어. 나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해줘. 엄마 응?"

병진과 딸이 만나기로 한 그날, 미선은 딸의 설득에 마음을 굳혔다.
딸은 어머니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씻기고자 자기 대신 친부와 만나기로 약속한 창경궁으로 보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병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더 전신을 전율시키며 자신을 사로잡았으며 통곡에 가까운 신음소리를 냈다.
병진은 덜컥 가슴이 철렁거리며 내려앉았다.
속내를 결코 들춰보아서는 안될 미선과 자신의 딸의 깊숙이 갈무리된 내면 속의 그 무엇인가를 새롭게 느끼고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여린 듯 가냘픈 몸짓과는 달리 함부로 가까이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
그처럼 가까이 접근할 수 없는 거리감을 주는 것과는 달리 딸아이의 시선은 병진을 강렬하게 끌어당기는 흡인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일까?
그 투명하고 깊은 흡입력에 자신도 모르게 빨려들어 침몰하듯 빠져버린 뒤에야 그녀가 보이지 않는, 감춰놓은 안개 속에 가려진 실루엣, 그녀의 삶의 아픔과 슬픔을 살며시 엿볼 수 있었다.

아마도 못내 잊지 못하고 가슴 밑바닥에 깔리어 사라지지 않았던 의문스러운 의문은 그 빛나는 눈빛 속에 잠겨있던 짙은 수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어둠이 그의 무의식 속 감정을 옭아매어 사로 잡은 것이다.
그의 기억 속에, 가슴에 응어리진 의문의 건더기가 이제 봄눈 녹듯 감쪽같이 사라지며 개운해졌다.
그러나 미선과 그의 딸을 만난 기쁜 순간조차도 그는 집에 있는 아내와 자식들을 떠 올렸다. 

‘아내와 자식에게는 어떻게 말해야 좋단 말인가········’

비극의 시대사인 광주민주화항쟁 때문에 만들어진 수많은 고통과 아픔 속에 살아가야 하는 이들.
병진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면서도 숨어 지낸 딸을 끌어안고 목 놓아 울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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