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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는 원나라 예부시랑인 음준(陰俊)

<우리의 뿌리를 찾아서> 죽산음씨(竹山陰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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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정복규
기사입력 2007-09-10

시조 음준(陰俊)은 원나라 예부시랑으로 공민왕 비인 노국공주(魯國公主)를 수행하고 고려에 들어와 죽산군(竹山君)에 봉해졌다. 이때부터 우리나라 음씨(陰氏)의 연원을 이루었으며, 후손들이 죽산에 세거하면서 본관을 죽산으로 삼았다.

 죽산은 경기도 용인군과 안성군 일부에 속해있던 옛 지명이다. 본래 고구려의 개차산군인데 신라 경덕왕이 개산군(介山郡)으로 고치고, 고려 초에 죽주(竹州)로 고쳤다. 조선 태종 때 죽산(竹山)으로 개칭, 여러 차례 변천을 거듭한 후 1913년 일부는 용인군에 속하고 나머지는 안성군에 합해졌다.

 음씨(陰氏)의 본관은 죽산·괴산·경주·여주·충주·음성 등을 비롯하여 24본 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모두가 죽산음씨의 세거지명에 불과하다. 괴산음씨의 시조는 고려 문종 때 문과에 장원급제한 음정(陰鼎)이다.

 죽산음씨의 시조 음준의 아들 음철(陰澈)은 조선의 개국원종공신으로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절(文節)이란 시호를 받았다. 음철의 아들로 소경(少卿)을 지낸 음곤(陰崑)과 판사를 역임한 음윤(陰崙)의 대에서 가문이 크게 번창했다.

 군자감정을 지낸 음기남(陰起南)과 병조판서에 추증된 음희철(陰希哲) 등도 가문을 빛냈다. 음도광(陰道光)은 부호군을 역임했다.

 음성석(陰聖惜)은 공조참의를 지냈으며, 음인수(陰仁洙)와 음인성(陰仁星) 은 각각 참봉을 지내는 등 모두 가문을 빛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죽산음씨(竹山陰氏)는 남한에 총 706가구, 2,94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2000년 현재는 2,260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조사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추축된다. 주요파는 ▲죽산파 ▲파주파 ▲고흥파 ▲대구파 ▲괴산파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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