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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족과 일제가 왜곡한 발해의 역사

대진국(발해)의 건국지 동모산과 천문령은 하남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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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훈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09-03-17

본 글은 2부작으로 기획되었으나, (2부)가 장문인 관계로 3부작으로 연재됩니다. -성훈-

(1부) 대진국(발해)의 시국처인 동모산은 어디?
(2부) 한족과 일제에 의해 왜곡된 발해의 역사
(3부) 대조영이 이해고를 격파한 천문령은 어디?


▲   일제가 조선인의 민족혼 말살을 위해 20만권의 사서를 불태웠다는 신문기사
지난 (1부)에서는 대진국의 시국처인 동모산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이상한 것은 중국 고대지명대사전으로 추적한 동모산은 교과서에서 언급한 길림성 돈화가 아니라 하남성 학벽시로 나온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배하면서 조선인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우리의 위대한 역사를 축소.조작.왜곡했기 때문이다. 기나긴 일만년의 역사와 엄청난 강역을 통치하던 단군조선과 고구려의 적장자를, 역사가 짧은 일개 섬나라(백제의 방계 혈통) 인들이 식민지배 하려다 보니, 조선 역사의 말살 없이는 도저히 식민지배를 이룰 수 없다는 판단에서 였을 것이다. 역사 = 민족정신, 민족얼로 민족정기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한족과 일제에 의한 역사왜곡

당태종은 안시성전투에서 패해 연개소문에게 항복하고는 그 보복의 일환으로 붓을 들어 역사서를 가필.왜곡하여 패전의 분풀이를 한다. 한족이 세운 나라인 송나라는 동이족인 금나라에게 자기네 두 황제인 휘종과 흠종이 잡혀가 무릎을 꿇리는 치욕을 당한다. 이를 분개했으나 힘이 딸리다보니 대신 붓으로 자기네 역사서를 왜곡하는 보복을 한다.

원나라 이후, 오랜만에 한족인 명나라가 중원을 차지하면서 영락제는 남쪽에서 북경으로 수도를 옮기고는, 동이족의 역사를 산해관 이동으로 몰아내기 위해 본격적인 역사왜곡을 단행한다. 그 이유는 명의 수도인 북경 근처는 옛날부터 대대로 한족의 강역이었다는 것이다. 그 과정의 하나가 <삼국연의> <수호전> <열국지> 등 소설을 통한 역사 왜곡이며, 또 하나는 지명조작을 통하여 역사를 왜곡하게 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예전에 요수(遼水)로 불렸던 황하(黃河)를 현 요녕성 요하(遼河)로 지명 이동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요동.요서 이론이 형성되는 것으로, 요서는 요하의 서쪽이고, 요동의 요하의 동쪽이라는 희한한 이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또 그러한 이론을  증명하기 위한 지명 조작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한서지리지>에 기록되어 있는 유주(幽州)의 요서군(遼西郡)을 하북성 진황도시 일대로 옮기는 것이다. 그 역샂왜곡의 결정적 근거로 요서군의 한 지명인 고죽성(백이.숙제의 고죽국)을 옮겨다 놓았다.

그러나 한족들에 의한 이러한 역사조작은 최근에 산서성 영제시에서 백이.숙제의 묘가 새로이 발견됨으로서 역사왜곡의 진상이 낱낱이 백일하에 들어난 것이다. 

▲  명나라 영락제는 산서성 최남단에 있던 고죽국(백이.숙제의 묘)을 북경 동쪽으로  옮겨다 놓았다. 그런 것을 이번에는 일제와 식민사학계가 황해도로 옮겨다 놓게 된다.  
▲  산서성 최남단 황하 굴곡지점인 영제시에서 새로 발견된 백이.숙제의 묘. 바로 이 묘가 있는 영제시 일대가 고죽국이 있던 자리로 한서지리지의 요서군의 일부인 것이다. 여기에 있던 노룡(요서군) 지명을 북경 동쪽으로 옮겨 버린다.
 
이렇게 지명조작을 함으로서 예전의 단군조선과 고구려의 강역은 산해관 동쪽이었다는 엉터리 역사를 조작한 것이다. 당시 이런 역사조작의 피해자였던 조선왕조는 명나라의 속국이었기 때문에 반항 한 번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명나라의 의도에 부합하기 위해 스스로 조상의 역사를 축소시키는 한심한 짓을 국가적으로 시행하게 되는 것이다.

▲   일제가 말살한 우리 역사. 그런데 아직도 교과서가????
그래도 조선왕조 시대에는 단군은 실존 인물이었으나, 일제가 나라를 빼앗고는 <조선사편수회>를 통해 단군을 신화로 만들어 버리고, 단군조선의 역사를 지우고 고구려의 역사 강역을 한족의 지명조작으로 쭈그러들은 것보다 더 축소시키는 엄청난 역사왜곡을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 같이 축소.왜곡.조작된 것이 바로 대진국(발해)의 역사이다.

대진국(발해)은 비록 약 300년 밖에 존속 못한 나라였지만(한족의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긴 역사의 나라이다), 고구려의 강역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고 오히려 고구려보다 더 큰 강역을 가지고 있었던 나라였다. 당나라에서는 발해를 해동성국(海東盛國)으로 불렀다. 그러한 대진국의 강역을 알아보려면 그 핵인 동모산과 천문령(天門嶺)을 찾지 않고서는 그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1부)에서 언급했듯이 대진국(발해)에 대해 현 교과서의 이론과 <한단고기>의 기록이 서로 다르다. 그러나 같은 점은 천문령은 당나라와 동모산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 식민사학계의 이론은 동모산으로 가서 나라를 세우려는 대조영을 이해고가 쫓아가서 천문령에서 패한다는 것이고, <한단고기>는 “대중상이 동모산에 나라를 세웠고, 대조영이 홀한성을 쌓아 도읍을 옮기고 당장 이해고를 천문령에서 물리쳤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1부)에서 보듯이 동모산(東牟山)은 모산(牟山)의 동(東)으로 읽어야 하며, 그 위치는 하남성 학벽시나 개봉시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필자가 동모산을 학벽시로 보는 큰 이유는 하남성 낙양에서 개봉시로 가는 길 주변에는 천문령 같은 큰 산이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천문령과 동모산은 거의 같은 축선 상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당나라 군대가 요동으로 나오려면 낙양으로 나와야 하는데, 이해고의 공격축선은 합벽로 또는 개봉로이다. 

 천문령은 당과 대조영이 요동의 패권을 다툰 곳

당시 대조영은 당나라에 비해 분명 군사력 면에서 상당히 열세였을 것이다. 당나라는 당시 중원(섬서성 일대)을 통일하고는 신라와 손잡고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린 강국이었다. 그런 강국과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나라(당시는 후고구려)가 전쟁을 하는데 있어 필시 병력의 열세를 느낀 대조영은 지형지물로 군사적 열세를 커버했으리라고 본다.

평지에서 전투를 했다면 병력이 열세인 대조영이 이해고를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즉 대조영은 이해고의 군대를 천문령으로 유인해 매복으로 대군을 전멸시킨 것으로 보아야 한다. 특히 천문령이란 계곡으로 들어오다 매복에 걸리면 살아서는 돌아가지 못할 정도로 천연의 요새로 깊은 계곡이어야 이러한 역사적인 이야기가 성립되는 것이다.

이 천문령 전투 이후로 요동의 절대 패권은 대조영에게로 넘어간다. 즉 고구려 멸망 후 약 30년 후에 대조영이 다시금 요동의 패권을 다시 쥐게 된 것이었다. 천하의 패권을 놓고 당나라와 후고구려가 싸운 전투라면 상호간에 상당한 규모의 군사력이 동원되었음이 틀림없다. 과연 그러한 전투가 벌어진 천문령은 어디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천문령(天門嶺)을 중국고대지명대사전에서 검색해 보면 그러한 곳이 없다고 나온다.  그 외에도 별다른 글이 별로 없는 것으로 보아 천문령은 본시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생각을 해 보았다. 왜냐하면 동모산도 이미 다른 이름으로 왜곡이 되어 있었고, 모산의 동쪽이라는 가정으로 찾아보니 역시나 검색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천문령은 천문산으로 찾으면 검색이 된다.  

▲   천문령으로 들어가는 입구. 뒤에 천문산 바깥이 보인다. 이해고는 이 길을 지나간 것으로 보인다.
 
(3부)가 곧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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