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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력사 인물] 박색명창 석개, 복을 누린 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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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주 기자
기사입력 2020-06-26

 

력사에 이름을 남긴 조선녀성들 (8)

 

박색명창 석개

(16세기 중엽)

 

무슨 일이든지 애쓰고 노력하면 성공하지 못하는 법이 없다.

석개는 가장 어려운 처지에서 눈물겨운 노력으로 마침내 명창으로 이름을 남긴 서울의 민간가수였다.

그는 16세기 중종때 왕의 사위로서 부귀영화를 누리던 려성위 송인의 집의 하잘것 없는 녀종이였다.

일찌기 부모를 여의고 홀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가 주저앉은 곳이 서울장안의 이 집 잔심부름군자리였다. 석개의 얼굴은 몹시 박색인데다가 특별히 타고난 재주도 없었다.

송인의 집에는 곱게 차린 녀인들이 그득하여 석개같이 못나고 볼품없는 처녀에게는 험하고 궂은일만이 차례지였다.

석개는 물통을 지고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오는 일이 업이였다.

그는 매일 아침 일찌기 우물가로 나가야 하였다.

석개는 뽀얀 안개가 감도는 수려한 산발, 여기저기 지저귀는 뭇새들의 울음소리, 귀밑머리를 가벼이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결, 모든것이 정답고 청신하게 안겨오는 우물가의 아침이 제일 좋았다. 높은 담장이 사방 둘러막힌 궁궐같은 주인집에서 쉴새없이 떨어지는 긴 호령소리와 걸핏하면 내려지는 매질속에 하루를 팽이돌듯 하고나면 온몸이 노그라지군 하던 그였지만 이른아침 우물가의 청신한 공기를 마시고나면 고달픔이 씻은듯이 사라지군하였다.

어느날 이른아침, 그날도 우물가로 나온 석개는 조용한 틈을 타서 나직이 노래를 불러보았다. 곡이 제 뜻대로 되지 않았다. 시골에서 나무군아이나 나물캐는 처녀들이 막 부르는 소리만도 못하였다.

《아이참, 내 목소리는 왜 이다지도 듣기 싫을가. 하지만 괜찮아. 난 노래부르기가 즐거운걸 뭐.》

석개에게는 노래할 천성적인 성대도 없었을뿐아니라 노래공부를 시키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석개는 노래를 좋아했다. 노래가 없이는 순간도 살수 없는 그였다.

왜서인지 계속 노래를 부르면 설음도 고달픔도 사라져버리는것만 같았다.

그날부터 석개는 물통을 우물귀틀에 걸어두고 온종일 노래만 불렀다.

잘 안되는 대목을 거듭 고쳐 불러보았다. 한번만 더, 한번만 더하는 사이에 시간은 퍼그나 흘렀다.

날이 저물녘에야 정신을 차리고 부랴부랴 주인집에 들어서니 차례지는것은 사정없는 매질이였다.

《아니, 이 종년이 종일 어디서 놀며 건달을 부리다가 이제야 기여드는거냐.》

그는 늘 이렇게 매를 맞으면서도 노래공부를 중단하지 않았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러하였다. 매를 치는 주인이 이기느냐, 매를 맞으면서도 노래공부를 그치지 않는 석개가 이기느냐 겨루기라도 하듯 매일같이 노래소리, 매질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이 경쟁에서 마침내 석개가 이기고말았다.

주인은 그에게 물긷는 일대신 들에 나가 나물을 캐오게 하였다.

석개는 광주리를 옆에 끼고 들로 나갔다. 머리우에서 이름모를 새 한마리가 아름다운 소리로 지저귀였다.

마치도 석개에게 자기의 목청을 뽐내기라도 하듯이…

《아! 나에게도 저렇게 고운 목청이 있었으면…》

석개는 아름다운 새를 쳐다보며 나직이 말하고나서 목청을 가다듬었다.

또다시 노래련습이 시작되였다.

광주리를 내려놓고 한곡 부르고는 돌멩이를 하나씩 주어 광주리안에 넣었다.

어느덧 해가 중천에 떠오르고 광주리속에는 돌멩이가 가득찼다.

배가 고프고 목도 아팠다.

그러나 노래를 그만둘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이번에는 광주리에 담은 돌멩이를 한알씩 도로 꺼내면서 노래를 한곡조씩 불렀다.

해가 뉘엿뉘엿 질무렵 석개는 산나물이 절반도 차지 못한 광주리를 안고 돌아왔다. 이제는 매를 맞는것쯤은 두렵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전날처럼 매를 맞은 그는 허기진 배를 그러안고 새우잠을 자면서 명창이 되는 꿈을 꾸었다.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석개는 들에 나가서 온종일 노래를 부르고 집에 돌아와서는 매를 맞았다.

그렇게 되니 주인도 더는 어쩌지 못하고 석개가 제 소원대로 노래를 하게 내버려두었다.

이러한 꾸준한 노력끝에 석개는 서울에서 제일가는 명창이 되였다.

사람들은 석개를 가리켜 백년이래 일찌기 있어보지 못한 명창이라고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이름난 문인인 류몽인은 석개의 이런 이야기를 전하면서 《어우야담》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아! 세상일이 모두 부지런히 노력을 쌓은 후에야 이룩되나니 어찌 홀로 석개의 노래만이랴! 나약하여 뜻을 확고히 세우지 못한다면 능히 성취할 일이 하나도 없는것이다.》

석개는 박색의 녀종으로부터 예술의 어려운 기교를 완강한 노력으로 터득하여 이름난 명창이 된 열정적인 처녀였다.

 

 

근면한 노력으로 복을 누린 림씨

(17세기말~18세기초)

 

숙종왕때 사람인 김학성의 어머니 림씨는 공짜로 생긴 물건을 마다하고 자기의 노력으로 근면하게 일하여 복을 누린 녀인이다.

그는 일찌기 남편을 여의고 홀몸이 되여 어린 아들형제를 데리고 남의 바느질을 하면서 근근히 생활하였다. 이악하고 부지런한 어머니는 가난속에서도 두 아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무진애를 써가며 학비를 대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림씨가 혼자 집에 있을 때였다. 비가 몹시 쏟아져내리여 비물이 세게 떨어지고있는데 전과는 달리 퇴마루아래 락수물 떨어지는 자리에서 무슨 쇠소리같은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것이였다. 소리나는대로 쫓아내려가서 살펴보니 비물에 패인 땅속에 큰 항아리같은것이 묻혀있었다. 머리를 깊이 수그리고 그안을 들여다보던 림씨는 그만 깜짝 놀랐다. 그의 얼굴빛은 금시 해쓱해졌고 가슴은 몹시 활랑거렸다.

그속에 백금이 가득 들어있는것이 아닌가.

림씨는 누가 볼세라 흙으로 메워버렸다.

며칠후 림씨는 오라버니에게 부탁을 하여 그 집을 팔고 산간마을의 작은 오막살이로 이사하였다. 그때로부터 어머니는 닭이며 염소, 송아지를 기르고 누에도 치고 길짬도 하였으며 밭을 갈고 농사일을 하였다. 그러다나니 언제 한번 허리를 펼 짬도 없었고 손은 마디마디 터갈라져 말이 아니였다.

두 아들도 글방에 다니며 학문을 닦는 여가에 어머니의 일손을 도와 부지런히 일하였다. 근면하고 굳센 어머니의 모습은 두 형제의 마음속에 어느덧 근로와 자력의 청신한 새싹이 내리게 하였다.

세월은 흘러 림씨는 생일 60돐을 맞이하게 되였다. 림씨의 오빠도 오고 온 집안이 한자리에 모여앉았다.

생일상은 어머니와 두 아들의 땀으로 이루어진 열매들로 진수성찬을 이루었다.

이미 학문도 성취하고 어엿한 대장부로 자라난 아들형제를 바라보는 림씨에게는 수십년전 항아리속의 백금을 발견하고 급작스레 이사를 하던 때가 생각났다.

림씨는 오라버니와 자식들에게 비로소 그때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그랬더니 오라버니는 《참, 임자도 없는 그 보화를 가지고 살림을 하였더라면 모진 고생은 면했을것이고 아버지없이 지내는 이 아이들도 굶주리지 않았을게 아닌가.》하며 아쉬워하였다.

이에 림씨는 이렇게 말하였다.

《의롭지 못한 재물은 반드시 재앙을 불러오는 법입니다.

까닭없이 큰 재물을 얻은것은 상서로운 일이 아니오니 그 백금을 팔아 벼락부자가 되였더라면 기이한 화가 생겨났을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란 마땅히 고생을 해봐야 하는데 어린 두 아들이 생활의 안락함에만 물젖게 된다면 학업에도 애써 노력하지 않게 될것입니다.

빈곤한 생활환경에서 자라지 않고서야 어찌 재물을 얻게 되는 길이 쉽지 않다는것을 알수 있으오리까. 그래서 나는 이사를 하여 우선 내 머리에서 물욕을 없애고 자식들도 자기의 피타는 노력으로 이루어진 재물만이 의로운 재물임을 알고 자력으로 살아나가게 되기를 바랐던것입니다.

지금 우리 집의 약간의 저축은 모두 나의 열손가락을 놀려 나온것이니 아무 노력없이 공으로 쉽게 생긴것과야 그 마음에 있어서나 귀중함에 있어서나 비교할바가 되오리까?

그때 용단이 있었던 까닭으로 나는 항상 마음이 편합니다.》

이 말을 들은 오라버니는 림씨의 청렴결백에 탄복하였고 두 아들은 어머니의 근면함, 성실함에 깊이 감복하였다.

한편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림씨는 고관의 부인들에게만 주는 정부인(정2품)의 칭호를 받게 되였다.

림씨는 장수하였고 그 자손들이 번성하였는데 사람들은 모두 림씨가 아름다운 덕을 지니고있기때문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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