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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력사 전설] 을밀장군과 을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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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주 기자
기사입력 2020-07-02

 

▲ 을밀대. 사진=서광     © 이형주 기자

 

을밀장군과 을밀대

6세기 중엽 고구려 평양성 내성의 북쪽 장대로 세운 을밀대에는 을밀장군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전설이 깃들어있다.

을밀장군은 뛰여난 무술과 용맹, 슬기로운 지략으로 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싸움에서 큰 공을 세워 인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세월은 흘러 로년기에 이르게 되자 을밀장군은 아들인 나래를 비롯한 많은 젊은이들에게 무술을 배워주었고 일정한 수준에 이른 다음에는 3년 석달을 말미로 산중에 보내여 무술을 익히도록 하였다. 나래는 아버지의 곁을 떠나면서 사랑하는 처녀 고비에게 아버지를 잘 돌봐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들이 산중에서 무술을 배우기 시작한지 몇해가 지난 어느날 뜻밖에 외래침략자들이 평양에 쳐들어왔다.

을밀장군은 이미 늙은 몸이라 싸움을 지휘하기가 여간만 어렵지 않았다. 남복차림으로 장군곁에서 싸우던 고비가 무술을 닦으러 떠난 젊은이들을 불러오자고 간청하였으나 그때마다 을밀장군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자고 큰 뜻을 버려서야 되겠느냐.》

그러면서 장검을 뽑아들고 말에 올라 대오를 이끌고 적진으로 쳐들어가 외적을 삼대 쓰러눕히듯 무찔렀다.

그런데 을밀장군이 싸움에서 그만 중상을 입게 되였다. 렴탐군을 통해 을밀장군이 자리에 누웠다는것을 안 외적들은 기를 쓰며 달려들었다.

적정을 보고받은 을밀장군은 투구와 갑옷을 갖추어입고 모란봉에 올라 결사전을 조직하였다. 치렬한 싸움의 나날이 계속되였다.

그런 속에서 을밀장군은 또다시 치명상을 입고 의식을 잃었다.

고비는 더 생각할 겨를이 없이 말을 달려 무술을 닦고있는 나래와 젊은이들에게 갔다. 그는 무술터에 당도하여 평양성의 소식을 전하고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나래와 평양성의 젊은이들은 갑옷을 입고 평양성으로 달려왔다. 평양에 도착하여 장군지휘처를 바라보니 거기에는 장군기가 나붓기고있었다. 그들이 지휘처에 올라가니 벌써 을밀장군은 숨을 거두고 누워있었다.

한 늙은이가 젊은이들앞으로 나서며 《장군은 이미 이틀전에 돌아가셨소. 하지만 장군은 오랑캐놈들을 쳐물리치기 전에는 자신을 여기에 그냥 세워달라고 유언하셨소.》라고 말하면서 흐느껴울었다.

《아버님!》

《장군!》

나래와 젊은 장수들은 을밀장군을 목놓아 부르며 스승의 뜻을 이어갈 굳은 맹세를 다지였다.

평양사람들은 을밀장군의 위훈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해 장군이 지휘처로 정하였던 모란봉에 정자를 세우고 《을밀대》라고 그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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