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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력사 인물] 붓을 꺾은 김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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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주 기자
기사입력 2020-07-04

 

▲ "평양의 절경을 그려내기에는 나의 재능이 너무도 모자라는구나" 조선의 오늘     ©이형주 기자

▲ "평양의 절경을 그려내기에는 나의 재능이 너무도 모자라는구나" 조선의 오늘     © 이형주 기자

▲ "평양의 절경을 그려내기에는 나의 재능이 너무도 모자라는구나" 조선의 오늘     © 이형주 기자

▲ "평양의 절경을 그려내기에는 나의 재능이 너무도 모자라는구나" 조선의 오늘     © 이형주 기자

▲ "평양의 절경을 그려내기에는 나의 재능이 너무도 모자라는구나" 조선의 오늘     © 이형주 기자

▲ "평양의 절경을 그려내기에는 나의 재능이 너무도 모자라는구나" 조선의 오늘     © 이형주 기자

 

붓을 꺾은 김황원

 

김황원(1045~1117년)은 고려때의 이름난 시인이였다.

어느해 여름 김황원이 평양에 도착하였다. 이름난 시인으로서의 그의 명성을 잘 알고있던 관리들과 선비들은 시인에게 평양의 절경을 노래한 명문장을 하나 남겨달라는 청탁을 하였다.

그들의 청탁을 쉬이 받아들인 시인은 며칠후 모란봉에 올랐다.

부벽루에 올라 평양의 풍치를 부감하던 시인은 그 절경에 심취되여 그만 넋을 잃고말았다.

어쩌면 저리도 한폭의 그림같을가?!

한동안 시상을 고르던 김황원은 마침내 일필휘지로 붓을 달렸다.

 

긴 성 한면엔 강물이 늠실늠실

큰 들 동쪽엔 산들이 우뚝우뚝

 

하지만 시인은 더 붓을 놀릴수 없었다.

그는 붓을 쥔채로 부벽루아래를 한동안 내려다보았다. 볼수록 황홀경을 이룬 모란봉의 경치에 또다시 반한 그는 다시금 붓을 들었다.

하지만 왜서인지 손은 더욱 굳어지기만 하였다.

아무리 시상을 쥐여짜도 평양의 아름다운 풍치를 몇구절의 시에 다 담을수 없었던것이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 시인의 곁에 모여섰던 사람들은 하나 둘 조용히 사라졌다.

황혼비낀 부벽루에 홀로 남은 시인은 그만 붓을 꺾어버리고 주저앉아 마루바닥을 치며 통곡을 하기 시작하였다.

《아, 평양의 절경을 그려내기에는 나의 재능이 너무도 모자라는구나.》

그후 평양사람들은 이름난 시인이였던 황원도 그려내지 못한 평양의 아름다움을 길이 전하기 위해 그가 쓰다만 두구의 시를 부벽루의 기둥에 걸어놓았다.

그후 김황원의 시는 련광정의 기둥에 새겨져 후세에 전해지고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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