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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력사 사건] 운양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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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주 기자
기사입력 2020-08-03

 

《운양》호사건

 

1875년 8월에 일본침략자들의 군함 《운양》호가 강화도에 침입하여 무장도발을 감행한 사건.

조선에 대한 일본침략자들의 침략책동은 1870년대 중엽 일본에서 군국화가 추진되고 미제와의 공모결탁이 새로운 단계에서 이루어지자 교활한 《정한외교》단계로부터 로골적인 무장도발단계에로 넘어갔다.

일본침략자들은 1875년 4~5월에 《운양》호를 비롯한 3척의 군함을 우리 나라에 침입시켜 부산으로부터 금야만에 이른 동, 남해안일대를 미친듯이 싸다니면서 정탐과 무력시위를 감행하게 하였다.

1875년 8월에 일본침략자들은 중국의 우장까지 가는 배길을 측정한다는 구실밑에 또다시《운양》호를 조선연해에 침입시켰다. 해군소좌 이노우에놈이 이끄는 《운양》호는 남해를 거쳐 강화도를 향해 기여들기 시작하였다.

강화도는 당시 봉건국가의 수도인 서울의 중요 관문이며 군사요새지로서 봉건정부의 승인없이는 조선배들도 마음대로 접근할수 없는 곳이였다. 특히 강화해협어구에 자리잡고있던 초지진포대는 유미자본주의무력침공사건들이 있은 이후 조선봉건정부가 특별히 관심을 돌리면서 지켜온 초소의 하나였다.

8월 21일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침략선 《운양》호는 강화도앞바다에 기여들었다. 이날 적함장 이노우에놈은 20여명의 침략군을 작은배에 옮겨태워 초지진포대에 접근하였다. 포대에 접근하는 침략자들을 발견한 초지진포병들은 즉시에 폭탄벼락을 안기였다. 그러자 적들은 기다렸다는듯이 초지진포대를 향하여 포사격을 감행하였다. 이날 이노우에놈은 초지진포대에 침입한것이 마치도 배에 물이 떨어져서 급수지를 찾기 위한것이였던것처럼 꾸며댔으나 이것은 저들의 침략적정체를 가리우기 위한 궤변에 지나지 않는것이였다.

초지진에서 된타격을 받은 적들은 22일 아무런 방어시설도 없는 정산도에 달려들어 방화와 략탈, 학살만행을 감행하였다. 23일에는 영종진에 대고 함포사격을 마구 퍼부어 포대를 파괴한 다음 평화적주민들밖에 없는 성안에 기여들어 무고한 주민들을 모조리 학살하였으며 영종도를 완전히 재더미로 만들었다.

《운양》호사건은 일본군국주의자들의 로골적인 해적행위였으며 강도적인 무장도발책동이였다. 이후부터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조선침략책동은 더욱 로골화되였으며 1876년에는 《운양》호사건을 구실로 삼아 침략적인 《강화도조약》을 조작하는데까지 이르렀다. 이처럼 《운양》호사건은 일본군국주의자들이 조선침략의 구실을 마련하기 위하여 감행한 계획적인 무장도발사건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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