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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력사 사건] 아관파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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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주 기자
기사입력 2020-08-03

 

《아관파천》

 

1896년 2월에 친로파들이 짜리로씨야 침략자들과 공모결탁하여 국왕 고종을 로씨야공사관으로 빼돌린 사건.

청일전쟁(1894~1895년)후 우리 나라를 둘러싼 제국주의침략자들사이의 모순과 대립은 더욱 날카로와져갔다. 청일전쟁을 통하여 청세력을 조선에서 밀어제낀 일제침략자들은 조선을 제놈들의 독점적식민지로 만들기 위하여 미쳐날뛰였다.

다른 제국주의침략자들도 우리 나라 내정에 더욱 깊이 침투하면서 자기 세력을 확장하기에 미쳐날뛰였다. 이 엄혹한 시기에도 부패무능한 봉건통치배들은 자기 인민을 믿고 자기 나라 힘으로 나라와 민족을 구원할 생각을 하지 않고 친일파, 친로파, 친청파 등 여러 파로 갈라져 제가끔 외세를 등에 업고 권력싸움만을 일삼고있었다.

《아관파천》사건은 조선을 제놈들의 독점적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제국주의침략자들의 책동과 사대주의적봉건통치배들의 매국배족행위의 직접적산물이였다.

조선에 대한 침략야욕을 품어온 짜리로씨야는 친로파봉건통치배들을 내세워 제놈들의 계획을 실현하려고 꾀하였다. 1895년 8월 《명성황후살해사건》과 그해 10월 《춘생문사건》을 계기로 인민대중속에서뿐아니라 조선봉건정부안에서까지도 반일, 반미감정이 높아져가자 조선주재 짜리로씨야공사 웨베르는 그것을 리용하여 친로정권을 조작하기 위한 교활한 음모를 꾸미였다.

이를 위하여 그는 먼저 일제와 미제에 대한 불만과 공포에 사로잡혀있는 국왕 고종을 자기들의 공사관으로 빼돌리려고 하였다. 웨베르는 이 추악한 야망을 손쉽게 달성하기 위하여 인천에 와있던 로씨야해병들까지 서울로 끌어들이였다.

친로파봉건관료였던 학부대신 리완용을 비롯하여 리범진 등은 웨베르와 공모결탁하여 1896년 2월 11일밤에 음모적방법으로 고종과 왕세자(후에 순종)를 로씨야공사관으로 옮겨앉히였다. 뒤이어 반동관료배들은 친로파중심의 《내각》을 조작하였다.

짜리로씨야는 조선의 친로파정부를 조종하여 함경북도 경성의 석탄채굴권, 두만강과 압록강 상류지역 및 울릉도의 산림채벌권을 비롯한 여러가지 리권을 빼앗아가졌으며 조선봉건정부의 군사, 재정부문에 깊이 침투하였다.

애국적인민들은 친로정권의 조작과 그것을 통한 짜리로씨야의 조선에 대한 내정간섭을 교란하면서 여러가지 형태의 투쟁을 줄기차게 벌리였다.

날로 높아가는 인민들의 애국적투쟁기세와 그 압력에 의하여 국왕은 1897년 2월에 로씨야공사관으로부터 왕궁으로 돌아왔다.

《아관파천》은 자주적인 정권이 없이는 나라의 독립이 위험에 놓이게 된다는것을 보여주었다.

당시 로씨야를 《아라사》라고 불렀으므로 이 사건을 왕이 로씨야공사관(아관)으로 옮겨앉았다(파천)는 뜻에서 《아관파천》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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