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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원순 서울시장은 왜 죽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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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천 소설가
기사입력 2020-08-18

 

▲ 고 박원순시장 장례식장. 자료사진     © 편집부

 

[플러스코리아=이하천 소설가] 오랫동안 계속해서 잘못된 결정을 내려왔을수록 우리 마음은 그만큼 딱딱해져 가고, 더 자주 옳은 결정을 내릴수록 우리 마음도 그만큼 부드러워진다. 인생의 단계 가운데 자신감, 인격, 용기, 확신 등이 늘어나는 단계일수록 바람직한 대안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도 같이 늘어나 마침내는 바람직하지 않는 행동을 선택하지 않는 것 자체가 생각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른다. 반대로 일단 비겁하고 비굴한 행동을 하게 되면 그것들은 계속 나를 약하게 만들어 점점 더 비굴한 행위를 하게 되며 결국 내게서 자유를 빼앗아 가 버리고 만다. (M. 스캇 펙)

 

▲ 두 여성단체의 2차 기자회견. 자료사진     © 편집부

 

미투운동 무엇이 문제인가

닉네임 늘푸른:수치심을 느껴서 법적 책임을 묻고자 했다면 수사기관에 조용히 고발하는 방법을 택해야 했다. 어떻게 기관에 고발하기에 앞서 jtbc를 통해 그 내용을 샅샅이 전 국민 앞에 까발릴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분명한 선을 가장한 악행이요, 역폭행이었다.

내가 가슴이 아픈 건 미투라는 미명하에 저질러진 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인간들의 잔혹성 때문이다. 과연 미투가 찾고자하는 것,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서슬 퍼런 미투운동과 그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행되고 있는 또 다른 남성 인권유린은 누구의 몫이 될 것인가?(ytn. 2018.3.16.)

 

▲ 이하천 소설가.© 편집부

미투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인터넷에서 본 닉네임 늘푸른의 댓글이다. 우리사회는 다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둘러싼 미투운동으로 시끄럽다. 그리고 안희정 부인 민주원은 다시 김지은과 안희정 간의 사건은 미투가 아니라 불륜이라고 문제제기를 했다.

 

늘푸른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이 사람의 의견을 어떻게 봐야 할까? 역사적인 맥 위에서 엉망진창으로 뒤엉켜진 숨구멍들...숨구멍 하나가 열리며 막혀 있던 숨통에서 터져 나온 비명소리가 미투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선진국에서 시작 되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 나라들과 대한민국의 미투운동은 단계가 다르다. 어떻게 다를까? 선진국은 젠더감성지수가 7 이상에서 시작되었다면 우리는 젠더 감성지수가 3 정도에서 일어났다고 본다. 그래서 그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서양에서는 미투운동에 걸려들었다고 해서 자살하는 남성까지는 없다. 더군다나 성추행 정도로는 더더욱 그렇다. 또 아무 잘못도 없는 가족들의 신상까지 터는 그런 일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다. 우리는 벌써 여러 명의 남성이 자살을 했고 자살미수에 그치기도 했다.

 

앞으로 더 나오지 않으라는 것은 예견하기 어렵다. 그러나 예견되는 것은 서양은 이 일로 여성혐오 범죄가 나오지 않을 것 같고, 한국사회는 여성혐오 범죄가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나는 사실 이 부분 때문에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그래서 단계를 잘 파악해서 미투운동을 해야 한다고 본다. 이것은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이기 보다 젠더감성지수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영역이 확보된 선진국에서는 이 미투운동을 개인에 한정시켜 범죄냐 아니냐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개인영역이 형성되어야할 시기에 사회적 부모와 생물학적인 부모로부터 방해받고 저지당하고, 그 결과 결국 혼란된 정서를 가질 수밖에 없는 심리적 배경이 한국남성들에게는 있다. 그 사실을 완전히 무시한 채 한 개인에게만 저주에 가까운 마녀사냥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여성들이 과연 이 미투운동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핵심은 우리를 성적대상이 아니라 인간으로 봐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요원한 일이다. 이것은 민주화를 내면화 시키는 작업이기 때문에 외형적인 민주화투쟁 보다 더 힘들고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한 사회의 젠더감수성은 누군가 지속적으로 싸우지 않으면 공짜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남성들은 자신들이 어릴 때부터 조상으로부터 받아 온 꿀떡을 남김없이 받아먹었기 때문에 그로인해 파생된 권력을 놓아버리기가 참으로 힘들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남성들이 자라나면서 자연스럽게 들게 된 저 칼자루를 내려놓게 할 것인가. 우리는 같은 여성인 어머니가 길러낸 이 가여운 남성들,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저 남성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가급적 여자와는 일을 함께 하지 말자.’ ‘직장 내 성폭력 문제이니 여성을 채용하지 말자.’ 이런 식의 언어까지도 나왔다. 남성들도 이 일을 어찌해야할 지 모른다는 것이다. 급기야 극단적 선택을 한 남성 가해 혐의자가 나올 때마다 남녀갈등 양상은 커지는 모양새다. 2018317일과 18일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는 '(여성들의)잘못된 근거 없는 주장을 강력히 항의한다', '미투 운동과 더불어 남성의 안위가 위협받고 있다', '여성의 인권은 중요하고 남성의 인권은 중요하지 않은 것인가' 등 미투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글들이 올라왔고 이런 언어가 남성들의 심리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그러면 교육적 효과와 동시에 괘씸죄라는 부당함도 쌓이게 될 것이다.

      

역사학자들의 용어인 당대성

신채호, 함석헌 주도 고구려 통일 마땅론에서 삼국통일이 고구려로 통일이 되었어야 했는데, 그 못나디 못난 신라가 당이라는 외세를 끌어들여 통일을 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이 모양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 주장에 대해 도올 김용옥은 나는 불교를 이렇게 본다’(통나무, 1989. 168)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즉 신채호나 함석헌의 인상론적 마땅론에서는 전혀 역사의 실상에 대한 치밀한 고증과 역사를 역사에 즉해서 해석하는 방법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사를 포함한 한국사의 마당이 이루어지고 있는 주변 역사에 대한 포괄적 조감과 발달된 고고학적 성과에 의하여 새롭게 해석되는 고대사의 실상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오는 매우 엉성한 이론, 그런 이론의 허구성은 고구려가 망했으면 망하게 된 원인에 대한 치밀한 반성이 일차적으로 선행되지 못한 데에 오류가 있다고 했던 것이다.

 

이 시점에서 역사학자들의 용어인 당대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한국학의 대가인 김범부 같은 이의 주장에 따르면 그 당시 삼국은 민족이라는 개념이 아직 생겨나지 않은 시기였다. 서로 적이었고 늘 백제와 신라, 고구려와 신라 이런 식으로 전쟁을 수시로 해야 하는 시기였다. 민족이라는 개념은 훨씬 후에 구체적으로 생겨났다. 신라는 당과 친했고 백제는 왜국과 친했고 고구려는 말갈족과 친했다. 이러면서 서로 힘의 견제를 하게 된 것이다. 다 외세의 힘을 업어야 하는 시대였다는 것이다. 이렇듯 당대성을 무시하고 어떤 진단을 하면 오류가 발생하게 된다. 나는 이 말에 적극 동의한다.

      

이 당대성을 나는 종종 현 단계라는 표현으로 대체해 왔다. 이것은 같은 의미의 말이다. 이 미투운동에 당대성, 현단계를 적용해 본다. 나는 지난 번 글에서 정서적 지형도에 대해 말했었다. 성인지감수성이란 정서적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우리의 정서적 지도를 펼쳐 놓고 진단하고 싸움을 걸어야 보다 효과적인 투쟁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 지도를 무시하고 마치 성인지 감수성이 7 단계에 있는 것처럼 언어를 쓰면 당장 때려죽여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아진다. 우선 자신들 부모부터 척결해야 한다. 왜냐하면 다 가부장제라는 정신적 틀에서 파생된 사적정신을 받아들이고 사용하고 이익을 보고 그 길을 따라 언어를 쓰고 자식들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렇게 언어를 쓰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 절대적으로 무지했다는 말이다.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 사건을 다루는 여성계와 변호사는 좋다는 소리는 다 하고 있다. 이게 다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파리도 아니고 워싱턴도 아니다. 이런 입장에서 그럼 우리는 이 싸움을 어떻게 해야 하나?

 

모든 것이 정의와 공정이라는 개념으로 압축된다. 한국에서의 정의와 공정이란 강자에게만 차고 넘치고 약자에겐 아직 없는 개념이다. 그 개념을 놓고 무슨 일이 벌어지면 마치 다른 일은 다 되어 있는 것처럼 분노하고 질타하고 마녀사냥을 하고 손을 턴다. 가짜뉴스를 사용하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다 모르쇠를 하면서 한 개인의 인권적 차원마저도 깡그리 무시하는 대창부대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언론은 아예 대창부대를 이끌고 있다. 이게 맞나? 언론사의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해서 마음대로 날뛰고 빠지고 책임지지 않는 심각한 국면에 대해서도 교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해 보인다. 스스로 못한다면 법제정을 해서 강제로 하도록 해야 한다. 언론의 위축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유란 책임이 따른다. 책임지지 않는 자유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전시성 태도를 가진 여성계의 문제

사실 나는 여성계와 크게 부딪친 적이 있다. 최진실과 조성민 사태 때의 일이었다. 내가 어떤 일에 개입을 하면 그건 그 사람의 팬이어서가 아니다. 나는 한 번도 팬이어서 나선 적은 없다. 항상 인권적 차원에서 문제가 심각하면 나선다. 그 당시도 나는 제사가 싫다이후 등장한 개념인 왜곡된 모성성을 추적하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 집단무의식에 감춰진 그 그림자가 마녀사냥이라는 모습으로 대거 등장 하는 걸 보고 나섰던 것이다. 늘 있었지만 왜곡된 모성성이 뒤틀린 모습으로 구체화되어 인지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역사적으로 한국의 남성성이 여성성에 저지른 죄가 무지막지했기 때문에 그 점을 십분 감안하더라도 충청도까지만 몰았어야 했다. 이유는 현대는 인권적 차원이란 새로운 개념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랬으면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조성민이라는 30대 밖에 안 되는 한 어린 젊은이를 경상도까지 몰아갔다. 그것보다 어머니마저 없는 마당에 두 명의 자녀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아버지였기 때문에 그 아버지를 구하려고 나섰던 것이다. 다들 너무 무서워서 한마디도 할 수 없던 때였다. 왜 남성 편을 드느냐고 누군가 말했다. 거기에 무슨 네 편 내 편이 있나?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때 처음 역사적인 권력을 잡은 여성계의 횡포를 두 눈을 크게 뜨고 놀라서 바라보았다. 한 인간을 끔찍한 흉악범도 아닌데 도덕적인 잣대로 악한으로 몰아갈 권리가 그 누구에게도 없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사회의 무지막지한 횡포는 두 아이들을 고아로 만들었다. 나에게 덤벼들었던 수많은 대창부대들....그래, 속이 시원하냐고 묻고 싶다. 얼마나 인식의 눈이 멀어있으면 그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가? 또 그 아이들이 일생 동안 겪을 마음의 고통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생각을 했더라면 그리 행동하지 못 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창부대들 보다 더 책임을 져야할 장본인은 언론과 여성계다. 자신들이 과도하게 했다면 잘못을 인정하고 그것을 적정선에서 풀어주는 역할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죽도록 찔러 놓고 모르쇠로 그냥 넘어간다. 나는 그 당시 경상도까지 몰린 조성민을 단번에 서울까지 올려놓으려고 우리사회를 에워싸고 있는 천사(최진실)와 악마(조성민)라는 거짓의 막에 균열이 가도록 만들기 위해 mbc 100분 토론에서 언어의 표창을 날리는 위험을 감행했다. 그리고 쫙~금이 간 그 구도를 마지막으로 내려앉히기 위해 글 몇 편을 내보냈다. 그 대창부대들은 화살을 나에게 돌려 쏘아댔지만....집단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다가 모습을 드러낸 역사적인 상처를 상대로 싸우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왜곡되고 뒤틀린 모성성을 향해 말했다. ‘그래, 나를 핑계 삼아 그대들 마음에 쌓여 있는 그 상처의 찌꺼기들을 토해내라, 그래야 치유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라고. 말하자면 심리치료사의 입장으로 임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내가 내보내는 글의 대상은 일반인이 아니라 기자와 여성계였다. 그러니 글이 자연히 복잡하게 써 질 수밖에 없었다. 일반인 상대였다면 글을 쉽게 썼어야 했다. 어느 정도 평정이 되었을 때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져 있는 조성민의 심리적 교정을 위해 다음 단계를 밟았다. 그래서 그 역할을 하기 위해 글을 하나 생산해서 언론사에 넘겼다. 그러나 이슈를 따라가는 언론사의 특성도 있겠지만, 그런 마음의 능력이 언론사나 여성계에는 없었다. 나는 이 사실에 분노했지만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결국 아이들을 고아로 만들었다. 나는 지금도 그때 내가 좀 더 나서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조성민은 심리가 너무 허약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당시 10년 후면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거라는 말을 주변에 했었다. 무슨 예언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게 이법이기 때문이다. 10년 후 쯤 그들의 딸이 외할머니와의 극심한 불화를 겪고 있다고 살려주세요!’라고 비명을 지르며 언론에 나타났다. 나는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불거질 텐데 예감은 했었지만...역시 깜짝 놀랐다. 그 중 한 언론에 나온 기사전문을 싣는다.

 

[티비데일리 한예지 기자] 최준희 양은 5일 새벽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사실이 밝혀지지 않고 죽는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 글을 남긴다며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최준희 양의 주장에 따르면 고 최진실의 어머니인 정옥숙 씨가 오빠 최환희 군만 예뻐했으며, 자신을 돌봐주던 지인인 이모할머니가 재산을 노린 것이라며 내쫓고 두 사람이 연락을 지속하자 폭언, 폭행을 일삼았다고 했다. 또한 가족끼리 여행을 갔을 때 옷걸이로 때리고 목을 조르는 등 폭행을 당했으며, 미국에선 불안정한 가족에 입양될 뻔 했고 홍진경 이영자 등이 자신의 미국행을 막아주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또한 할머니는 화장품이 없어지자 도둑으로 몰았고 글을 쓰는 현 시점에도 집안이 다 박살나 있다고 알렸다. 이와 관련 최준희 외할머니인 정옥숙 씨는 연락이 되지 않아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 이 가운데 최준희 양은 페이스북 댓글 창을 통해 다시금 추가 상황을 알리고 있다. 최준희 양은 외할머니가 자신의 손을 깨물어 생긴 흉터와 폭력을 막다 생긴 상처들이 남은 손 사진을 게재했다. 또한 "지금도 제가 엄마 아빠를 죽였다고 소리 지르고 엄마가 절 낙태시켰어야 했다고, 내 딸이라도 이해를 못하겠다고 하셨다"고 했다. 이어 "지금까지 어떻게든 엄마 없어서 저렇다는 소리 듣기 싫어 열심히 산 것 밖에 없다. 근데 이제 더 이상 살 용기도 안 나고 그냥 엄마 아빠가 너무 보고 싶다. 저 괴물이랑 있다간 저도 괴물이 될 것 같다"고 했고 "현재 집밖으로 도망 나와 있다"고 알렸다. 최준희 양은 오빠 최환희 군에 대해선 "오빠는 어쩔 수 없이 할머니 편이다"라고 했고 "방송에 나오는 최진실 엄마 정옥숙 여사님은 지금까지 다 연기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

 

 

▲ 故 최진실 추모식에 참석한 최환희-최준희 남매. 사진=이데일리     © 플러스코리아

 

 그 당시 나에게 덤벼들었던 대창부대들...그 대창부대를 이끈 여성계...다 책임져라.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도대체 성인아이들이 따로 없다. 이 성인아이들이 박원순 시장 건으로 다시 보니 아직도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

 

최준희에 대해서 잠간 언급하고 지나가야겠다. 최준희가 우리사회에 내놓는 언어를 보면 특별히 사랑을 많이 필요로 하고 사랑을 많이 주는 성향이다, 그리고 특히 EQ가 발달된 아이다. 사랑이 많다는 건 인간으로서 아주 좋은 자질이다. 또 그 나이에 인습에서 파생된 악을 상대로 싸우는 용기와 언어능력이 탁월하다. 나의 그 나이 때를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나는 이럴 때 아빠라도 있었더라면...하고 한탄했었다. 여기서도 가부장제의 정신적 틀에 갇힌 할머니의 병적 심리가 유감없이 드러난다. 그 가엾은 아이들, 특히 손녀인 최준희와 아이라이너 가지고 할머니와 싸웠다는 사실은 할 말이 없도록 만든다. 아들만 중시되고 딸은 소용없다는 가부장제의 논리가 여실히 드러난다. 이 아이가 앞으로 걸어 나갈 심리적 길을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아이들을 고아로 만든 우리사회의 미성숙한 마음들에 할 말을 잊는다. 나는 유독 예술가적인 기질이 많은 최준희, 그 아이가 마음의 평화를 찾게 되기를 바란다. 그 길로 가기 위해서는 점차적으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사회적 헌신의 길도 찾아 병행하며 가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래야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아 낼 확률이 높아지고 그래야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될 것이다. 이제 남자친구까지 생겼다고 하니 그 좋은 자질이 나는 누구인가?’를 찾아 가면서 가족들로부터 받은 모든 상처를 씻어내고 활짝 피어나기를 빌어본다. 나는 사실 그 당시 거대한 인식의 악마가 개입된 것을 보았지만 차마 그 말은 하지 못 했었다는 점을 밝힌다.

       

박원순 시장에 대한 성추행 고발 사건

나는 여성계에 묻는다. 누가 당신들에게 절대 권력을 주었기에 사람들을 자꾸 죽이느냐고. 당신들은 그렇게 결점이 하나도 없는 능력을 타고났나? 내가 보기에 여성계도 결점 투성이다. 물론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해내는 것 인정한다. 그렇다고 아무리 역사적인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여성이라고 사람을 죽이는 일을 그렇게 쉽게 해도 되는 게 아니다. 또한 죽은 사람의 가족들의 일생은 어떻게 되나? 마음의 평화는 끝장이 났다고 봐야 한다. 그걸 그런 식으로 리드를 하는 건 여성계의 정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 여성계와 김재련 변호사의 기자회견. 사진=한겨레신문     © 플러스코리아

 

박원순 사건만 해도 그렇다. 아무리 자료를 살펴봐도 이 사건은 인식의 문제가 있기는 하나 심각한 성추행 사건으로 보기 힘들다. 김재련이라는 변호사는 여성계와 합세한 한 것으로 보인다. 합세를 한 심리적 배경은 평소 심리가 원리에 가 있지 않고 한 판 쳐서 눈에 뜨이게 하면서 권력을 쟁취하려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 시끄럽게 해야 국가로부터 보조금을 더 받는데 유리한가? 아니면 존재감이 드러나나? 말하자면 남성들의 주 재료인 정치권에 만연한 전시성 사고가 그대로 들어 있다는 것이다. 윤미향 사건에 침묵을 하는 걸 보고 나는 이런 내 생각을 확신한다. 그렇게 남을 죽일 정도로 정의감에 불탄다면 이번 사건과 비교도 안 되는 엄중함을 가지고 있는 윤미향 사건에 여성계와 김재련은 침묵할 수 없다! 검찰의 선택적 정의는 분노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선택적 정의를 택하고 있다. 이것은 진보진영도 마찬가지다. 이 선택적 정의가 나타날 때마다 참으로 난감하다. 악의성으로 날뛰는 상대방을 생각한다면 이해되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게 들어가서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박원순 시장 피해자에게 동정심이 단 1%도 없다. 그걸 정치적으로 이용할 줄 몰랐다고 해도 나타나지도 않고 내놓는 언어가 전혀 말이 안 된다. 그 언어를 본인이 썼다면 그런 언어를 내놓는 사람은 위력에 의해 아무 말도 못하는 그런 약자입장이 아니다. 2차 가해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요설은 삼가라. 당신네들이 완전히 죽여 놓은 망자와 남은 가족들에 대한 가해는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그 가족들은 대한민국을 위해 무지막지하게 저돌적으로 나가는 남편 때문에 희생한 죄밖에 없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들은 지금 가족 전체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입장에 있다고 한다. 여성계와 김재련은 너무 큰일을 저질렀다.

      

박원순 전 시장은 왜 죽었나?

나는 한 번도 박시장의 팬이었던 적이 없다.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은 상태. 단지 그가 하는 행정능력을 보고 으응? 능력이 있나? 정도였다. 대통령이 되고 난 후의 문재인 대통령의 언어는 EQ의 영역을 충분히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의 언어를 높이 평가하지만, 박시장이 쓰는 언어는 한 번도 나를 감동시키지 못했었다. 특히 그의 소탈한 서민적 언어, 특별히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태도는 나에게는 별로였다. 나는 카리스마가 있는 지도자를 좋아하는 성향이 있는 듯하다. 또 박시장의 곁에서 가까이 접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그에 대한 것은 그의 죽음 이 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죄가 없다면 왜 죽지? 물론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깊이 들어가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그의 소탈함이 그를 죽였다고 생각한다. 그의 소탈함은 그냥 소탈함이 아니라 휴머니즘에 젖줄을 댄 높은 단계의 소탈함이다. 그런 소탈함은 아직 한국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는 우리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정신적 독립운동가의 길을 걸었던 것. 그러니 같은 길을 가는 젊은 사람들에게 동지의식을 갖고 아주 친절했고 사랑해요라는 말을 자주 쓰며 그런 그에게 사람들은 안기기를 서슴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집까지 팔아 그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지원했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빚까지 졌다.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에 단 한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진심으로 한국사회의 변화를 위해 살아온 그가 성추행 건으로 고소가 되었다. 김재련이 내 놓은 난닝구 사진은 이렇게 하고 있으면 에어콘이 없어도 시원하게 여름을 날 수 있다는 뜻으로 여러 사람에게 보내진 것이다. 나도 처음엔 어, 이게 뭐지? 했었지만 실상은 그렇다는 얘기다.

 

▲ 서민적이고 소탈했던 박원순 시장. 자료사진     © 플러스코리아

 

여러 자료들을 살펴보면 실제 그는 시민운동의 대부였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했다는 것이다. 아버지 마음이기에 자식들에게 돈을 줄 수 있었다는 거다. 어느 네티즌이 무릎에 멍이 든 것을 보고 호~해 줄께~한 것을 보고 우리 아빠가 자기가 다치고 들어오면 저렇게 행동했다는 글을 올린 것을 보았다. 또 어떤 이는 그 비서에게 한 행동을 다 자기에게도 다른 이에게도 했었는데....나도 이걸 고소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는 글을 올렸다. 많은 사람들에게 늘 아버지의 마음으로 대했다는 반증이다. 시민운동계의 대부...이게 그의 마음 속에는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빚이 그렇게 많다는 것은 그를 늘 채찍질하는 요건도 되었겠지만...그를 벼랑 끝에서 걷도록 만든 요인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자신이 성추행 사건으로 고소가 된 것을 알았다. 죄가 없다면 왜 싸우지 않고 자살을 하느냐고 사람들은 생각하겠지만, 자신이 그 어린 사람과 싸움을 해야 하는 환경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지 않았나 싶다. 더군다나 그 흉측한 성추행으로...숭고한 정신으로 살아 온 자신을, 온갖 희생을 하며 살아 온 자신을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한국의 언론환경을 알고 있는 그가 언론과 김재련과 여성계가 더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까지 싸잡아서 치고 들어갈 게 뻔한데 무슨 수로 그 긴 싸움을 할 것인가? 이긴다 해도 그는 만신창이가 되었을 거다. 그는 너무 큰 슬픔과 절망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모두 안녕~’ 해버렸다. 전광석화처럼 평소 그가 했던 대로 빠른 행정력을 동원해서 일처리를 하듯 몇 시간 만에 결정을 한 것...이것을 보면 그는 아주 강인한 내면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다.

 

왜 소탈함이 그를 죽였다고 보나? 불특정 다수에게 보내는 그런 높은 단계의 소탈함은 그걸 받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일차방정식 즉 사적정신에서 파생된 소탈함에 익숙한 사회다. 그의 그런 소탈함은 그의 꿈을 사랑하고 동참하지 않는다면 이해하기가 힘들고 반대급부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 이익이 온다면 못할 짓이 없는 사회라는 걸 간과했다는 말이다. 그는 시장이 되고 나서도 권위적으로 하지 않은 듯 보인다. 그러니 아무리 비서가 해야 할 일이라도 미안했을 것이다. 해서 이것저것 어색한 것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말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나에게도 이런 성향이 있기 때문에 그런 면에 대해서 좀 안다. 말하자면 비서가 느낄 권위적 딱딱함을 미리 완화시키기 위해 비서를 위해서 말을 했다는 것이다. 안아달라는 말도 달리 해석하면 별 문제가 없다. 벼랑 끝을 걷고 있는 그도 인간이기에 가끔 극심한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자신의 등에 짊어진 짐....어떻게 하면 우리사회를, 악이 판을 치는 이런 세상을 바꿀 것인가...꿈꾸면서 짊어진 짐이 너무 무거웠던 듯 보인다. 서울시장이라는 자리를 권력의 자리로 보지 않고 계속 꿈을 꾸던 박시장...공적영역에서 공적인 언어를 쓰던 그는 사적영역인 가족...자신 때문에 큰 희생을 하는 가족에게는 죄의식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 가족에게 가서 어떻게 힘들다는 말을 할 수 있겠나? 그는 가족에게 얻어야할 위로를 자신을 수족처럼 보필하는 공적영역의 동지의식을 갖고 있던 비서에게 너무 힘이 든다, 나 좀 안아 줘라는 뜻으로 그리 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것은 자신의 등 위에 얹힌 짐을 위로해 달라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내가 그런 길을 걷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일생 동안 독립운동을 하는 심정으로 걷고 있다면 참으로 힘든 시기도 많았을 것이다. 그럴 때 주변에 있는 동지의식으로 뛰고 있다고 생각되는, 그러나 말이 좀 더 통하는 비서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걸 이성으로서 받아들이기보다 힘드시죠. 힘내세요. 아직도 할 일이 많으시잖아요.’라고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줬다면 되었을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 것까지 성추행으로 본다면 어디 사람이 무서워서 살 수 있겠나?

 

나이가 들어보면 동지의식을 가진 젊은 사람들이 많이 귀엽다. 그들에게 희망을 보고 기대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동지의식으로 자식과 같이 바라보았기 때문에 자신이 쓰는 언어에 문제가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 만약 박시장이 그 여성을 여자로 보았고 성추행이란 의식이 있었다면 뭔가 더 발전된 행동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리하지 않았다. 동지라는 개념은 있었어도 성추행이란 의식은 그에게 아예 없었다. 그 비서를 여성으로 보았다면 좀 더 멋진 사진을 보내지 뜻은 좋으나 누가 봐도 별로인 그런 속옷차림 사진을 보내지 않았다고 본다. 지지자들은 뜻을 알아보고 뜻이 좋기 때문에 열광했고, 그 여성은 뜻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짜증스럽고 흉측한 성추행으로 그 사진을 본 것. 공적정신과 사적정신의 충돌이다. 공적정신이냐 사적정신이냐에 따라 서로 언어를 교환하지만 180도 다른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공적정신을 가진 사람은 사적정신을 가진 사람에게 언어를 조심해서 써야하는 면이 있다. 그 여비서는 비서로 일할 당시는 자신의 모습을 숨겼을 것이다. 뭐 자신도 박시장을 존경한다고 믿고 있었을 지도...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위장이다. 그 이유가 그게 이익이 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경험한다. 이익이 올 것 같으면 무한한 친절을 보내던 사람이 이익이 오지 않는 상황이 되면 놀랍도록 변신을 하는 것을...박시장은 그 여성의 친절을 동지의식으로 바라보았고, 그 비서는 상황이 바뀌자 저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위장했던 사적정신이 고개를 서서히 들면서 다른 곳을 향해서 뛰기 시작했다. 인간은 이렇게 복잡한 동물이다.

 

샤워 뒤 속옷을 집에 보내는 것에 대한 불만을 말하는 그 여성은 비서역활이 구체적으로 뭔지를 몰랐을까? 바쁜 유명인사일수록 수족처럼 움직여줘야 하는 게 비서역활이다. 그 유명인이 피곤에 쩔어 자고 있다면 막 깨워서 준비를 시켜 무대 위에 올려놓아야 하는 것, 이게 비서들이 할 일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자칭 피해여성은 동지의식도 비서라는 직업의식도 약한 상태에서 그런 그의 소탈함을 성추행이란 개념으로 달리 볼 수 있다는 걸 변호사와의 상담을 통해 구체화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만약 그 여성이 그런 말이 불편해요라는 말을 했다면 박시장은 그 말을 당장 알아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4년이 지난 뒤에 느닷없이 성추행으로 고소를 해서 죄가 되는 지 법원의 판결을 받아보려 했다고 한다. 이게 말이 되나? 김재련을 찾아가 다른 성폭행 사건을 얘기하다 우연히 박시장 얘기가 나왔고 김재련은 눈을 번쩍 뜨고 박시장을 정조준하며 일을 진행했다. 그 파급효과에 대해 전율했을 것이다.

 

비서실 동료 20여명에게 텔레그램을 보여주며 피해와 고충을 호소(2차 기자회견. 7.22) 했다.’고 김재련은 말했으나 고소인이 어려움을 호소한 적 없다. 반대로 내 앞에 와서 자랑한 기억은 난다.(비서실 근무 별정직 공무원. 오마이뉴스. 7.31)’ 인사이동 요구했으나 시장에게 직접 허락을 받으라는 말을 들음(여성의 전화 보도자료. 7.16)’은 서울시 비서실은 201811월에 고소인에게 먼저 인사이동 권유함(서울신문. 단독보도.8.2)으로 바뀌었다. 고소사실 유출로 수사가 시작되기 전 증거인멸의 기회가 주어졌다(2차 기자회견. 7.22)고소인 모친이 1차 진술서를 기도를 부탁한다며 교회목사에게 전달했으며 거기서 외부로 유출 된 것으로 나왔다.

      

미투운동이 이런 식으로 정치적으로 이용되면 안 된다. 이것은 김재련이 여성계를 끌어들여 만든 작품이다. 보수 측에 있는 사람들은 박시장과 같은 종류의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쪽은 사적정신이 더 많기 때문에 자신의 집까지 팔고 엄청난 빚까지 얻어서 쏟아 부으며 독립운동 하듯 시민운동을 한다는 걸 꿈에라도 생각하지 못 하는 종류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한국사회는 바꿔야할 대상이 아니라 유지해야할 대상이다. 대부분 기득권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숭고한 정신은 아예 뿌리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공적인 영역에서만 움직이는 사람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바보야 뭐야...낄낄낄...이런 식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박원순 시장의 시신이 산에서 내려오던 날 드디어 걸렸다고 낄낄대며 방송을 하는 장면을 연출하는 거라고 본다. 하도 변한다고 하니 앞으로는 보수 측이 어떻게 변할지 두고 볼 일이다. 제발 변해서 한국사회를 앞으로 나가도록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그래야 뇌가 없다는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서 이것은 박시장과의 동지의식은 없고 막강한 파워를 가진 남자로서만 박시장을 바라 본 비서와의 관계 속에서 파생된 인식의 차이 문제라고 본다.그래서 공적정신과 사적정신의 충돌이라는 것이다.

 

 

그 피해여성은 뜬금없이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고 절규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이 말만 들으면 뭔가 굉장한 억압을 박시장이 해왔던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런 언어를 내놓았으면 다음 수순으로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아무 것도 내놓지 못했다. 그 피해여성은 그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일생동안 뛰어 온 사람이 박원순 시장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이것은 인간다운 세상이 아직 우리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는 인식이 전혀 없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젊은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린 다르고 우린 귀엽고 우린 잘났거든요라며 우리사회가 다 된 줄 안다는 것. 뭔가가 걸린다면 그걸 시정하는 정책을 박시장에게 건의하면 얼마든지 해결을 할 마음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 여성은 최고의 보스를 만난 것이다. 그 여성은 서울시장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뛰어넘어 박시장의 큰 꿈에 동참할 수가 없었고, 박시장은 자신이 가진 권력에 대해 너무나 소탈하게 털어버리고 자신과 같이 뛰는 젊은 여성을 으레 한국사회의 변화를 원할 거라고 생각해서 동지의식으로 대했다는 것이다.

 

심한 모멸감과 배신감을 느낀다.” 이것은 박원순 시장이 이 일에 가담한 여성계 동지와 비서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다. 신승목 변호사가 고 박원순 시장에 대한 무고 및 무고교사 혐의로 김재련 변호사를 고발했다. 나는 우리사회의 박시장에 대한 시선에 교정이 오기를 바란다. 원통하고 아까운 죽음이 아닐 수 없다! 숭고한 정신으로 일생을 힘들게 살아 온 고인의 명복과 남아 있는 가족들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 우리사회가 다 같이 노력하기를...빌어본다.

      

마음이 아픈 사회

[이하천. ‘조성민친권에 대한 인문학적인 관점’. 조선일보 2008.12.3.]

인격의학의 창시자 폴 투르니에(Paul Tournier)는 스위스의 의사이며 심리치료사이다. 그는 많은 환자를 치료하면서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치료를 해 놓으면 다시 오고, 또 해 놓으면 오고... 그래서 어느 시점에서 상담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환자의 인격을 함께 치료해야 완전한 치료가 되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의 질병은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세계적인 이론은 개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난리가 일어나는 것에도 적용이 된다고 본다. 나는 우리사회가 내면(인격감각, 또는 여성성, 또는 EQ)을 오랫동안 방치하고 돌보지 않은 관계로 마음이 아픈 사회라고 진단을 내린다. 그래서 우리사회가 병들어 있다면 사물감각(sense of things) 즉 남성성만 가지고 들여다보면 진단이 어려울 수 있다는 근거를 이 이론에서 찾는다. 우리사회를 치료해 내려면, 말하자면 좀 더 나은 사회로 만들려면,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천시되고 억압받아온 인격감각(sense of persons) 즉 여성성을 어떻게 사회심리 가운데 올려놓느냐가 관건으로 떠오른다.

 

사물감각이 발달한 남성은 전쟁하는 능력이 있다.

인격감각이 발달한 여성은 평화하는 능력이 있다(인격의학의 정의)

 

이 사건으로 대혼란을 겪는 것은 바로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사물감각(IQ)만 중시하고 인격감각(EQ)은 거세를 시키는 우리의 교육현장이다. 이것은 그랬을 때 반드시 병이 들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내면세계와도 깊은 연관이 있어 보인다. 우리사회는 사물감각 즉 남성성 위주로 발전되어 왔기 때문에 또 자꾸만 그 길로 가고 있기 때문에 돈이 많아도 학력이 높아도 불행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무슨 문제만 일어나면 그렇게 싸움이 많다.

 

사나운 폭풍우에 갇힌 이 아이들을 어찌해야 하나...

말과 말 사이, 각종 틀린 무늬로 형성된 심리들의 비본질적인 날뜀과 이동... 과거의 상처들이 되살아나서 현재를 보지 못하는 각종 마음의 장애물들, 어머니가 자신들을 버리고 자살을 했다는 것을 성장단계에서 심리에 받아들여야 하는 그 복잡한 마음의 고통, 아버지로부터마저 버림을 받았다고 계속 주입을 시키는 왜곡된 마음들, 그 아버지가 악마이며 구제불능인 인간임을 받아들여야 하는 아이들............

아이들의 정신은 정말 폭우가 쏟아지는 밤 첩첩산중에 갇힌 것이다. 나는 나에게 온갖 비난이 쏟아져도 끄떡도 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아버지 조성민이 그 아이들을 구해낼 수 있는 중요한 한 사람으로 지목이 되기 때문이다.

 

이 글은 현 단계 너무 사나운 회오리바람으로 불고 있는 우리사회의 미투운동의 문제에도 적용이 된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죽이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미투운동의 복잡성

한국에서 미투운동의 본질은 복잡하다. 이것은 총체적으로 우리의 자라남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마음이 급하겠지만 이번 운동으로 너무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다행히 고발을 할 수 있는 사회적 장이 마련되어 있다. 고발을 하고 다음 단계로 빠르게 넘어가야 한다고 본다. 그 이유는 사회적인 매장이 그 무엇보다도 큰 형벌이기 때문이다. 다음 단계란 법이다. 법적처리를 하고 미숙한 상태로 있는 법 개정을 해야 할 일이다. 가해자 남성의 가족까지 끌고 들어가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처사다. 엄밀히 말하면 그 가족들도 피해자다. 이런 일은 서양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같은 미투라는 언어를 쓰고 있지만 서양과는 단계가 다르다는 말을 하고 있다. 서양은 한 개인이 개인으로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사회적 부모와 생물학적인 부모들이 만들어 놓았다. 개인이 개인으로 자랄 수 있는 데는 성에 대한 개방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성에 대한 억압이 아직도 굉장하다. 특히 모범생인 남성들에게 요구하는 성적인 억압은 그 정도가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억압은 때때로 엉뚱한 방향으로 표출되기도 하고 병적인 상태가 되기도 한다. 이런 남성들이 느낄 억울함도 충분히 공감한다.

 

해서 1차 저지선 정도로 전선을 구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여성은 피해만 입는 천사이고 남성이 다 잘못하고 있다는 식은 곤란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맞지 않기 때문에 곧 이런저런 늪에 빠지게 된다. 남성성이 가부장제라는 정신적 틀에서 자신들에 유리한 꿀떡을 날름날름 받아먹은 결과 오만의 뿔이 머리에 잔뜩 돋아났다. 이것은 대단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게 길러놓고 훌륭한 인격체가 되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정신을 몰라도 너무 모른 무지의 소치다. 머리에 돋아난 오만의 뿔들은 자라면서 자만심으로 변질된다. 이 자만심은 남성성의 핵심을 파고들며 흔들어 댄다. 그 흔들림에 막강한 권력이 주어지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뿔들은 요동친다. 돈으로(대표적인 예가 이명박 전 대통령)성으로(대표적 예가 이윤택 연출가)침투한다. 이 뿔들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 대창으로 때려잡자는 심리는 이해는 되나 현 단계에서는 곤란하다. 그런 식은 남성성이 걸어 온 길을 여성성이 답습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여성성은 남성성 보다 훌륭한 에너지다. 인격은 이 여성성 부분에서 성장하기 때문이다. 해서 여성들 자신은 무슨 잘못을 하며 어떻게 이 시대를 살아야 하는 지 그리고 남성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 지에 대한 성찰도 같이 병행해야 한다고 본다. 이것은 한국이란 독특한 역사적 맥락에서 보다 효율적인 전쟁을 해야 미투운동이 성공적으로 자연스럽게 우리사회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흡수되는 결과가 온다는 것을 말한다.

 

상위권에 속하는 잘난 남성들이 이런 싸움이 나기 전에 그러면 안 된다.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고 막고 나섰어야 했다. 공부는 왜 하고 성공은 왜 하고 강자는 왜 되나?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라고? 그렇다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 70% 정도만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흑인 노예들을 해방 시킨 것도 잘난 남성들이 앞장서서 해결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들 자신이 노예라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잘난 남성들은 잘난 채는 200% 하면서 여성문제에는 침묵하고 낄낄거리고 꿀떡이나 날름날름 받아먹고 권력만 잡으면 사기나 치고 올라 탈 궁리나 하면서 으히히 징그럽게 웃었다.

 

장자연 사건도 그렇게 한 여성을 비참하게 만들면서 술이나 먹고 올라타는 그 신경 두꺼움... 그렇다. 나는 그 두꺼운 피부에 분노한다. 두껍지 않다면 그런 현장을 보았을 때 피부가 따끔거리고 아파야 한다. 이 남자 저 남자에게 조리돌림을 당하면서 장자연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자살뿐이었다. 뛰어난 외모로 배우가 되어서 살겠다는 한 여성의 꿈을 그런 식으로 짓밟고 방관해 놓고 상황이 이러한데 인권 따지게 됐나? 그 여성의 부모가 강자였다면 남자들은 이런 일을 꾸미지 못했을 것이다. 장자연의 약한 입장, 가여운 욕망을 꿰뚫어 본 것이다. 장자연도 우리사회가 얼마나 배경이 없는 여성에게 위험한 사회인지 인지를 못하고 자신의 외모만 믿고 뛰어들었다가 변을 당했다. 장자연 사건은 끝까지 파헤쳐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12명에게 번갈아 가며 성폭행 당한 후 나는 그들의 노리개였다.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며 자살한 단역배우 자매 자살사건도 반드시 법적조치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것도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여성계가 정말 정의감에 불탄다면 장자연 사건이나 자매자살사건 같은 것을 끝까지 추적해서 잘못에 대한 응징을 해야 할 것이다. 내가 남성들에 대한 이해를 조금 하는 것은 그들이 그것밖에 모르도록 길러진 사회적 배경 때문이다. 그리고 남성들의 생물학적인 본능적 욕구가 제대로 분출되면서 살도록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지 않고 가여울 정도로 억압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래저래 산 너머 산이다. 갈 길이 멀다는 뜻이다. 범죄적인 차원과 아닌 차원을 구별하고 제도와 법을 세밀히 촘촘하게 만들어내는 것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도 본다.

 

미투운동으로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육체적 성폭행, 성희롱 문제를 보면서 사실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이런 일이 저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었다고? 한국인에게 내재된 긍정적 에너지와 그것을 방해하는 악의적 에너지를 쫒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는 정신적인 성희롱, 성폭행이 더 핵심이었다. 조몰락조몰락거리다 희롱하다 성폭행으로 이어지는 정신적 강간범들을 잡아내는 것이 더 큰 관심 분야였다는 말이다. 성이란 엑기스다. 육체의 엑기스는 성으로 표현되고 정신적 엑기스는 진정성으로 표출된다. 가부장제에서 파생된 언어가 정신적 엑기스인 진정성을 어떻게 야금야금 갉아먹는지, 그래서 어떻게 한국인이 가져야 할 진정성이 이익에게 자리를 내주는지가 나의 주제다.

 

그러나 육체와 정신은 따로 분리할 수 없다. 해서 한국여성들에게 일어나는 육체적 성폭행은 서양 여성들에게 일어나는 성폭행 보다 그 피해의 정도가 훨씬 더 깊을 수밖에 없다. 서양은 이미 무엇이 옳으냐 그르냐의 잣대로 가족관계와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그릇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서양에서 일어나는 성폭행은 범죄자의 수준에서 바라보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다. 한국사회는 무엇이 옳으냐 그르냐의 잣대가 무엇이 이익이냐 아니냐라는 잣대에게 그 자리를 빼앗겼기 때문에 구름 위를 걸으려던 새로운 세대가 느낄 정신적 충격이 더 크다. 전 세대는 정신적 부분은 아예 포기를 하고 이익만 쫒고 산 형국이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는 정신적 자긍심, 자존심을 갖고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강렬하게 표출되고 있다. 이중 삼중으로 한 개인을 옭아매는 이 올무로부터 어떻게 탈출을 할 것인가가 관건이다.이것은 약자인 남성들에게도 적용된다.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품위 있는 말이 표면에 떠오르고 있으나 아직 한국여성에게는 성적 자기 결정권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자신은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나 사회적 환경이 강자에 의한 크고 작은 권력으로 에워싸여 있기 때문에 깊이 들어가 보면 있는듯하지만 아직은 없다고 봐야 한다. 있다면 혼란된 자기 결정권이 있을 뿐이다. 이유는 성적자기결정권이란 어릴 때부터 지속적으로 부모와 사회로부터 성에 대한 교육과 성에 대한 경험이 자유롭게 쌓아져야 올바른 판단력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것도 언어싸움으로 축적시켜나가야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싸우지 않고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이 세상에 그 어디에도 없다. 서양은 위대한 선조들이 정신적 부분을 싸워서 그만큼 이루어 놓았고 한국의 조상들은 제사나 열심히 지내며 살면서 학연 지연 혈연에 얽매여 생존에만 급급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강자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환경으로 판을 짜기 때문에 결과는 뻔하다. 젊은이들에게는 더 가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 역사적인 늪을 위대한 모성의 힘으로 넘어야

현 단계에서는 서로 윈윈하기 위해서 운동을 해야 한다. 여기서도 위대한 모성의 개념이 등장한다. 이 역사적인 늪을 위대한 모성의 힘으로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범죄자와 객기를 구분해야 한다. 객기 정도 가지고 누구를 자살하도록 몰고 나가거나 파멸하도록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것은 네가 도둑질을 했으니 나도 하겠다는 것과 같다. 그렇게 몰고 나가면 다른 곳에서 심각한 여성혐오범죄가 나 여기 있거든하고 쓰윽~고개를 내밀 확률이 높아진다. 말하자면 저 밑에 숨죽이고 있던 오크류(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오크 괴물)들이 일어날 빌미를준다는 것이다. 서울이나 지방을 가릴 것 없이 아직도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 또 데이트 폭력으로 죽어나가는 여성도 한 둘이 아니다.강남 한복판에서 한 남성이 모르는 여성들의 얼굴을 번갈아 아무 이유 없이 주먹으로 때린 뒤 달아난 사건... 지난 5'서울역 묻지마 폭행 사건'과 닮은꼴이다. 이런 식으로 하면 가장약자인 여성들이 한 대 맞을 것을 두 대 맞고 두 대 맞을 것을 네 대 맞는다. 여자가 감히 남자에 덤벼들어?라는 오크류들이 저 밑에서 활동을 개시한다는 것이다.

 

전시대 여성은 인간이 아니었다. 희생의 대상자였고 아이 낳는 도구였고 어머니, 할머니라는 언어에 가둬 놓고 자신들은 빠져나갔다. 악은 미성숙한 인격을 침투의 대상으로 삼는다. 한국사회는 아직 미성숙한 인격이 곳곳에 쫘악 깔려 있는 상태다. 여성들이 화들짝 놀라고 으~~비명을 지르는 것은 여성을 성적인 대상, 희생의 대상으로만 보는 역사적 맥에 있다. ‘여자가 인간이라고? 그건 좀 곤란한데?’라는 심리를 우리의 조상들은 자신들의 잘난 아들들에게 조장해 왔고 적극 권장해 왔다. 또 그 논리를 따르는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기기까지 했다. 미투운동의 본질은 여성들이 일생을 이 땅에서 살고나면 영혼이 찌그러져 엉망진창이 되는 심리적 측면에서의 현 구조, 50대 이후만 되면 돈이 최고다는 생각을, 남성을 돈으로만 보게 만드는 구조를 깨는 게 핵심이다. (여기서도 진정성 문제는 심각하게 대두된다.) 그 구조를 깨야 남성도 여성도 훌륭한 인간이 될 수 있고 훌륭한 아들 딸을 길러낼 수 있는 아버지 어머니가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미투운동의 본질은 20대 때 동그란 형태로 자신만이 가진 독특한 생명력을 내뿜을 준비를 하는 자신의 영혼이 30, 40대를 지나면서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것은 단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남성들도 울분에만 머물지 말고 사회적 문제라는 측면에서 같이 동참을 하길 바란다. 누구를 위해서? 바로 자신들의 영혼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난 아닌데...’ 하지 말고 무지막지하게 진행되고 있는 이 사회의 범죄행위를 단죄하는데 남성들도 협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단체에서 집회 때 쓴 이게 나라냐, 악덕 포주지라는 표어에도 두 눈을 크게 뜨길 바란다. 이런 언어가 그냥 심심해서 나온 게 아니라는 것이다.

 

어릴 때는 아버지, 결혼해서는 남편, 노인이 되어서는 아들에 기대어 비주체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인구 절반인 전 시대의 여성, 집단무의식으로 자연스럽게 여성들 온몸에 내려와 앉은 전시대의 검은 그림자를 어떻게 벗겨내어 그것으로부터 해방이 될 것인가. 이것은 여성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남성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어머니, 누이, 사회적 여성성에 두텁게 내려와 앉은 이 검은 그림자의 피해를 암암리에 받고 자라난 남성들이 자신들의 정신해방을 위해서라도 이 그림자를 자신과 사회 속에서 몰아내려는 노력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 그래서 이것이 막중한 역사적 싸움이라고 보는 근거다. ‘이것은 과거와 미래의 싸움이다.’고 말한 최영미 시인의 말이 맞다. 그 역사적 싸움을 이렇게 정치적인 사건으로 전시적으로 가볍게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곧 엉망진창이 될 거라는 얘기다.

 

선을 정해서 몇 년 뒤부터 가령 50% 이상을 넘어서는 심각한 문제부터 해결을 해나가야 한다. 50%를 넘는 범죄자와 아닌 자의 객기는 구별이 필요해 보인다. 연출가 이윤택(육체적 성폭행범)과 시인 고은(정신적 성폭행범), 영화감독 김기덕과 배우 조제현, 목사 이재록, 북한에서 온 이경희 리듬체조 선수를 지속적으로 괴롭힌 대한체육회 전 고위 간부 ... 등등은 범죄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국회의원 민병두, 이봉주는 애초에 미투 영역에 집어넣을 수가 없는 일이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가벼운 접촉 정도는 다음 단계로 넘겨야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런 것까지 시비를 건다면 현 단계에서는 남성 전체를 적으로 돌릴 수 있다. 머리부터 치면 아 저러면 안 되는구나로 연결이 되는 교육적 효과를 볼 수 있다. 어쩌면 현 단계 대부분의 남성들에게 해당이 될 수 있는 쪽으로 몰고 가면 펜스룰,남성의 인권은? 뭐야 이거, 여자만 없으면 된다, 회식 출장 등에서 여성을 배제시키자등등 부작용이 심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저 밑에서 숨어 있던 오크류들을 자극해서 곳곳에서 활동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인간은 위대한 동물이기도 하지만 가장 위험한 동물이기도 하다. 한국여성은 누구나 다 단죄를 할 수 있는 천사가 아니다. 남성을 다 치려고 하면 그렇게 되도록 조장한 사회적 부모와 자신의 부모부터 쳐야한다. 해서 전선을 너무 넓히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라면서 휘황찬란한 반지를 자연스럽게 열 손가락에 낀 남성을 상대로 사랑을 해야 하는 한국여성들의 심리는 복잡할 수밖에 없다. 해서 때로는 엉뚱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때도 있다. 편안한 남녀의 관계를 얻기까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편안한 관계가 되어도 본질적인 복잡성을 가지고 싸워야 하는데 이렇게 비본질적인 문제까지 겹쳐서 싸워야 하니 이중삼중 한국여성들은 심리적 고통을 겪는다.

 

▲ 잘못된 미투운동은 중세 마녀사냥에 대한 복수극인가?     © 편집부


     

여성계는 냉철하게 본질을 봐야 한다

여성계에 냉철하게 본질을 보라는 말을 하고 싶다. 변호사들도 수시로 돈을 위해 움직이는데...변호사 당신들도 역사적 싸움으로 우리사회에 협조를 하면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민족의 역적으로 등장하고 싶지 않으면 이 역사적 싸움을 보다 깊이 들여다보고 우리사회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라는 거다. 돈이 생기는 쪽으로만 시선고정을 하지 말라는 얘기다. 당장 미투운동과 겸해서 해야 할 일은 남성을 오빠라고 부르는 호칭부터 고쳐야 한다. 그게 가장 시급해 보인다. 여성계는 가벼운 성추행 정도로 남을 때려잡는 일에만 몰두할 게 아니라 이런 근본적인 일, 언어를 바꾸는 일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여성을 비주체적으로 만드는 언어들을 척결하라는 것이다. 비주체적으로 자란 여성은 상황에 따라 온갖 악의적인 일을 다 저지를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여성계가 정말로 해야할 일

대학 교육을 받고 공무원이 될 정도의 수준 있는 여성이 자신의 몸조차도 지켜내지 못 한다면 본인도 문제지만 그건 우리의 교육제도에도 문제가 있다는 걸 뜻한다. 인문학은 이럴 때 대단한 역할을 하는데, 그 인문학이라는 것이 남의 나라 학문을 끌고 와서 그대로 학문적 용어로 가르치니 아이들의 영혼이 깨어날 수가 없다는 것. 현 단계에서는 그런 멋진 학문적 용어를 그대로 달달달 외워도 현실에 돌아오면 인습이라는 어마무시한 뻘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외웠던 것은 다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다. 그래서 인문학을 가르칠 때는 반드시 인습 속을 걸어 들어가 재해석해서 가르쳐야 한다는 것. 안 그러면 그것은 인문학자들이 정신적 사기를 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나는 갖고 있고 주장하고 있는 거다. 그 비밀의 문을 열지 않는 한 남성들도 여성들도 자꾸 정신적으로 헤매게 되어 있다.

 

나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다. 외국에 거주하는 그 아들이 어느 여름 나를 방문하면서 해외에서 베스트셀러인 책을 선물했다. 그 책은 한국에서도 인기가 있었다. 외국에서 베스트셀러라는데 넘어간 것이다. 나는 뭔가 해답을 얻을 게 그 책에 있을 것 같아서 흥미를 가지고 책을 펼쳤다. 서너 장 읽어가다 바로 이건 우리 사회의 현 단계에 맞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왜 그런지 그 사실을 아들에게 설명했다. 아들은 곧 알아듣고 승복했다.

 

이런 현실에 여성계는 눈을 떠야 한다. 자꾸만 사람들을 죽일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엉망진창으로 엉켜있는 잘못된 언어를 풀어내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여성계도 적극 나서서 교육을 시키고, 부모도 가르쳐야 한다. 그러려면 언어를 현 단계에 맞도록 만들어내야 한다. 이런 것은 사실 국가시책으로도 필요하다. 여성가족부는 쓸 데 없는데 돈 낭비하지 말고 이런 일에 돈을 써라. 그렇게 허공에 뜬 정신은 새로운 위장술로 자신을 방어하고 사회를 지극히 위험하게도 혼란스럽게도 만든다. 그 여성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등장한 두 여성은 그 위장술의 극치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나조차도 그 중 한 피해여성이 계속 행동하지 않았다면 홀라당 속아 넘어 갈 뻔했다.누군지 전체를 자세히 읽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위장술에 여성계나 우리사회가 놀아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서부터 대학까지 세밀하게 삶에 대해서 가르치라는 것. 우리 현실에 맞지도 않는 어려운 학문적 언어의 빵만 퍼 먹일 것이 아니라 직접 피부에 와 닿는 언어를 풀어먹여야 한다는 것. 이익을 보지 않으려 한다면 못 지킬 것 없다. 누군들 여성으로 살아보지 않았나? 이익이 올 때는 가볍게 굴다가 이익이 오지 않으면 미투....참 편리해서 좋겠다 그런 여성들은. 범죄행위에 속하는 성폭행은 다르다. 그렇다면 그런 여성들이 자신이 보는 손해는 어떻게 방어해야 하나? 바로 그런 것도 가르쳐야 한다는 것. 그런 정도의 나이와 수준이라면 얼마든지 자신을 정당하게 방어할 시대가 되었다. 이런 여성들이 위장할 필요가 없도록 만드는 것... 이것도 국가와 여성계가 해야 할 일이다.

 

▲ CCTV에 찍힌 朴시장의 마지막 모습, 배낭 메고...     © 플러스코리아

  

더 이상 자살하는 남성을 보고 싶지 않다!

싸움은 역사의 현 단계에 맞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더 이상 자살자가 나오지 않도록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 뿔 달린 남성성의 전철을 밟게 되지 않는다. 맨 앞에 나오는 닉네임 늘푸른이 쓴수치심을 느껴서 법적 책임을 묻고자 했다면 수사기관에 조용히 고발하는 방법을 택해야 했다.’가 정답이다. 이제부터는 이 방법을 써야 한다고 본다. 한 인간을 충청도까지만 몰지 경상도까지 몰지 말라는 얘기다. 한국 땅에서 20세기까지의 방법은 강자가 약자를 기만하고 놀리고 짓밟는 형태였다. 21세기의 방법은 강자와 약자가 서로 윈윈하는 방법을 찾아 조절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조절에서 강자의 배려심과 사회적 윤리성은 필수요건이다. 여성계는 강력한 강자의 입장이다.죄를 묻는다고 20세기의 방법을 쓴다면 뿔 달린 남성성에서 뿔 달린 여성성으로 교체되는 현상을 보게 될 것이다. 다 흉측하지 않은가. 우리는 인간인 남성을, 인간인 여성을 보고 싶을 뿐이다. 이것은 개인의 싸움이 아니다. 우리의 집단무의식과 싸워야 하는 역사적 싸움이다. 역사적 싸움에서 분노는 더 나은 삶의 질을 위해 필요하나 증오는 자제해야 한다. 남성은 여성에게 여성은 남성에게 가장 필요하고 가장 아름다운 존재인 삶의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그 아름다운 존재가 온갖 잡귀신에 둘러싸여 있으니 분노하는 것 아닌가? 한번만 더 이런 식으로 사람을 죽이면 나는 여성계에 전면전을 선포할 것이다. 남성들도 더 이상 가벼운 성추행 정도로 자살을 하지 말라. 그건 죽을 일이 아니다.

      

안희정 부인 민주원에게도 적극적인 응원을 보낸다.

2018331안희정은 잘못했지만 미투는 글쎄’ ‘갸웃거리는 남자들이라는 기사에 7000개가 넘는 댓글이 순식간에 달렸다. 많은 사람들이 안희정의 부인인 민주원이 주장하는 '이것은 불륜이지 미투가 아니다.'에 동조했다. 나도 이제는 미투로 이용될 수 있는 불륜이라고 생각한다. 대법원에서는 민주원의 억울함도 어느 정도 해소되는 쪽으로 결론이 나기를 바랬었는데 미투의 거센 바람 속에서 내려진 판결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최고위직 공직자가 부하직원과 그런 사건을 만든 것에 대한 판결인 듯싶다. 법원에서도 그 어떤 경로로든 안희정의 죄를 물어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예 민주원 말을 듣지 않은 듯 보인다. 그걸 김지은과 여성계는 미투로 생각했다. 이 오류를 바로 잡으려면 민주원이 다시 나서야 한다고 본다. 김지은도 성인으로서 30%-40% 정도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안희정에게 동정심이 1도 없다. 또 김지은에게도 동정심이 1도 없는 입장이다. 갑자기 날벼락을 맞은 민주원과 두 아이들에게 관심이 있을 뿐이다. 민주원은 적극적으로 다시 나서길 바란다. 두 아이들을 위해서 기본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원이 페북에 올려 놓은 안희정과 김지은, 김지은과 동료 간의 카톡 내용은 정황증거가 아니라 결정적 증거다. 누군가 이런 댓글을 달았다. ‘여성들은 다 안다. 저런 것은 연정을 가진 사람에게 쓰는 언어라는 걸라고.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법원 판결이 잘못된 것으로 몰고 가지 말고 그 판결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건 미투가 아니라 불륜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어서 판결을 다시 받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김지은은 뭐든 위력, 위력 하면서 위력이라는 말을 아주 잘 사용하는데...그동안 그녀가 우리사회에 보여준 행동을 보면 김지은은 하늘의 위력조차도 무서워하지 않는 성향을 가진 듯 보인다. 하물며 충남지사 정도야 자기 맘대로 안 되면 그대로 발로 걷어찰 수 있는 성향이라는 것이다. 속된 말로 연애질을 해놓고 무슨 미투... 두 사람의 연애질에 국가가 돈을 내야 하나? 뭐 자기가 미성년자인 줄 아는 모양이다. 민주원의 의견에 적극 응원을 보낸다. 민주원이 내놓는 자료를 보면 김지은은 민주원을 인간취급도 안하고 아주 물로 보았다. 민주원이 무슨 말을 해도 대놓고 무시하며 모른 척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고 한다. 두 부부가 자는 침실 안까지 들어갔다고도 한다. 김지은이 말 끝마다 내놓는 그 위력에 굴복했다면 부인인 민주원에게 그런 태도를 보일 수 없다. 이 부분만 보아도 김지은은 하늘의 위력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것에 우리사회가 속으면 안 된다. 민주원은 분노해야 한다. 벌떡 일어나라는 것이다. 어떤 시민운동가였던 여성이 이런 글을 올렸다.

 

먼저 꼬셔놓고 그 남자가 결국 돌아서면 강간이냐?/ 상식적으로 그것도 공직에 있는 사람이 가정 버리고 오길 바랬나?/ 알량한 자존심 지키는 것이 미투냐?/ 정말 구질구질하다./ 감히 니가 나한테 안 빠져? 난 이만큼 사랑하는데? 이거잖아?ㅎㅎ/ 아후 정말 ,.. 집착 심한 남자는 데이트폭력을 하고, 집착 심한 여잔 미투운동하는 이 거지같은 세상./

 

이 여성은 사족으로 클린턴은 르윈스키와는 연애를 했어도 공직이 유지 되고 우리는 완전히 죽여버린다고 썼다. 트럼프는 어떤가? 그러나 그런 세상이 오기 위해서는 우리사회의 젠더감성지수가 6-7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본다. 부산시장이었던 오거돈 성추행사건에 걸려든 그 여성공무원은 선거 전에 터뜨려 굉장한 정치적 회오리 바람을 탈 수 있었지만, 정치적으로 이용하지도 않고 아주 깔끔하게 처리했다. 변호사와 가족들이 훌륭하게 지도를 했기 때문이다. 김지은이 초반에 이런 식으로 행동했다면 그것은 미투가 될 만하다. 이제 미투를 하는 의도성, 음흉성, 위장성을 더 자세히 살펴야할 때가 온 것 같다.

 

 

결론

누가 우리의 가슴을 이토록 아프게 하나? 바로 우리 자신이다. 나는 빼고, 내 새끼 빼고, 내 부모 빼고, 내 가족 빼고, 내 학연,지연, 혈연 빼고, 내 진영 빼고 남이니까 친다는......그런 걸 허용하고 따라하고 무책임하게 공공성은 무시하고 살아 온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전체 인구에 비해 한 줌도 안 되는 토착왜구 탓 하지 말라. 그런 것은 차곡차곡 절차를 밟아 처리하면 된다. 겁낼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일제의 패망과 함께 그들이 남겨 놓고 떠난 재산은 환수해서 국고에 귀속시키면 된다. 그런 일은 핵심이 아니다. 핵심은 우리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 아마 그것은 남에게 책임을 전가해야 쉬운데 자신들도 반성을 해야 하고 또 변화를 해야 하니 너무 어려워서 그런 것 같다. 어려워도 이 산을 넘어야 한다. 맨 날 산 밑에서 내로남불, 진영논리로 뱅뱅 돌아봐도 산은 넘어지지 않는다. 그걸 넘어야 저 밑에 있는 약자들에게 햇빛이 도달할 수 있지 않겠는가? 공정과 정의가 그렇게 원이라면 그 개념이 한국인의 심리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깔고 앉아 있는 인습의 쓰레기를 치워내야만 한다. 그 쓰레기를 깔고 앉아서 그 위에서 모든 언어가 생산되니 어떻게 공정과 정의가 우리사회에 뿌리를 내릴 수 있겠는가? 미투의 뿌리도 결국 인습에서 파생되는 악의 꽃이다. 그 쓰레기를 치워야 동학창시자 수운 대선사가 말하는 시천주가 한국인의 심리에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며 그게 하늘의 이법이라고 감히 말한다. 이 부분은 동학만이 답이다에서 좀 더 자세히 말하겠다.

 

우리가 허용하고 만들어 놓은 공적정신 부재의 환경은 악이 설치고 다닐 통로와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 우리가 껴안고 있는 인습이 주 원인이라는 것. 환경을 맑게 하면 악의 존재들이 힘이 빠진다는 것. 젊은 세대에게는 이게 나라냐질문만 던져 놓고 더 이상 숨을 곳을 찾아 길을 떠나지 말라고 경고하고 싶다. 숨을 데가 있다고 해외로 어디로 정신 사납게 여행이나 다니며 골프채나 휘두르고 다니는 젊은이들은 정신 차리길 바란다.기성세대는 겉껍질(독립운동, 전쟁, 가난으로부터 해방, 민주화운동)을 만들어내느라고 죽기 살기로 뛰어야했다. 지금은 민주화를 내면화 시켜가야 하는 시기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이런 우리사회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100% 점수를 가진 사람이 나오기를 희망하고 아니면 절망한다.

 

조상들이 목숨까지 걸며 지켜낸 나라다. 젊은 세대...그대들도 목숨을 걸어라. 어리광 그만 부리고. 정치에도 적극 참여를 해라. 이것은 문재인대통령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손을 위해서는 그리해야 한다. 힘들여 이루어 놓은 겉껍질, 그 안의 알맹이를 채우는 건 젊은이들의 몫이다. 그래서 당분간은 공칠과삼 정도로 판결을 내리며 진보냐 보수냐를 선택하며 앞으로 나가길 바란다. 이것은 자존심의 문제다. 영혼의 문제다. 이것은 해외로 이민 간다고 해결 되는 게 아니다. 나는 그 과정을 다 해 보았기 때문에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다. 말하자면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다음 조상을 원망하고 사회를 원망하고 남의 나라를 원망해라.

 

그런 걸 다 해 놓고 나서 남을 원망하라는 것. 지금은 윤리성을 높여 훌륭한 사회로 만들어내는 것..........이것이 시대정신이고 그대들 앞에 떨어진 소명이다. 그래야 이게 나라냐를 외칠 수 있는 윤리성이 확보된다. ‘이게 나라냐를 외치기만 하면 누가 나라를 만들 건데? 대통령 혼자서? 이럴 때 쓰는 속된 말이 있다. ‘꿈이 너무 야무지다’... 이것이 돼야 일본을 미국을..., 전 세계를 맞상대할 수 있는 윤리성이 확보된다. 맨 날 남의 나라, 남을 원망하면서 자신들은 빠져나간다. 나는 묻고 싶다. 너는 뭐냐?... 더불어민주당도 윤리성을 좀 더 높혀라! 지금까지 보인 행태는 별로 말이 안 된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어두움의 세력들과 싸울 수가 있겠는가? 문제는 자기 자신에 있는데 늘 보면 남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그럴 줄 몰랐나? 거기다 주택시장까지 실패를 하자 국민들이 이게 뭐지? 하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서게 되는 거다.

 

주택정책도 한국사회에 맞게 해야지 어디서 자본주의 시장원리니 말도 안 돼는 나발을 불고 있다. 우리 같은 사회에서 몇 채 이상, 몇 백 채 부동산을 가지는 게 말이 되나? 전세제도라는 이상한 제도를 만들어 약자를 털어 또 한 채의 집을 살 수 있는 구조...이런 텃밭을 만들어 놓으면 누구라도 뛰어들 수밖에 없다. 선진국 국민들도 마구잡이로 뛰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 이것은 국민성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를 만드는 사람들의 문제성 정신능력 탓이다. 자유민주주의는 그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도 그 나라의 역사에 맞는 공공성을 확보하고 그 위에서 써야 한다. 한 채 이상은 무조건 100% 이익을 환수하고 공공 임대주택을 지으면 끝나는 일을 못하는 건 정치권, 기득권의 짝짜꿍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갑질도 이런 갑질이 없다. 선진국 같으면 폭동이 일어날 문제다. 경실련은 아주 잘하고 있는데...더 예리한 칼날로 엉망진창으로 엉켜있는 주택문제를 정면 돌파하기를 바란다. 이재명지사의 주택정책이 아주 돋보인다. 바로 그것이 답이다.

      

사이비 종교에도 종교의 자유라는 언어를 쓰는 것은 정말 희한한 발상이다. 남에게 해를 가하는 자유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있다면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게 다 인간이 하는 짓이지 남의 나라나 하느님이 하는 게 아니다. 엉뚱하게 잘 계신 하느님에게 뒤집어씌우고 빠져나갈 궁리를 하지 말라는 얘기다. 그러다가는 또다시 남의 나라에 먹힐 수가 있다. 그 때 가서 또다시 남의 나라를 원망할 것인가? 다시 묻는다. 너는 뭐냐고.

 

李霞天(소설가, 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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