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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피해주민들 "우리 원수님 보내주신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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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주 기자
기사입력 2020-09-16

 북 로동신문은 16일 "우리 원수님 보내주신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이 왔다!"는 제목으로 혼연일체의 감동깊은 화폭이 펼쳐졌던 황해남도 태풍피해지역 인민들의 격정넘친 목소리를 소개하였다.

▲ 김정은위원장, 피해복구건설현장 현지지도. 사진=조선중앙통신  © 플러스코리아

 

▲ 평양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피해지역으로 이동하는 제2수도당원사단. 사진=메아리  © 플러스코리아

 

▲ 제1수도당원사단, 함경남도피해복구장에서 살림집건설준비작업에 착수.사진=조선의오늘  © 플러스코리아



다음은 보도 전문.

 

《우리 원수님 보내주신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이 왔다!》

혼연일체의 감동깊은 화폭이 펼쳐졌던 황해남도 태풍피해지역 인민들의 격정넘친 목소리를 들으며

 

위대한김정은시대는 인민에 대한 열화같은 사랑의 새 전설이 날에날마다 꽃펴나는 격동의 시대이다.

얼마전 무섭게 범람한 큰물에 잠기였던 은파군 대청리에서 《수재민들은 군당청사에서, 일군들은 천막에서》라는 감동깊은 이야기가 전해지더니 뒤이어 경애하는원수님의 숭고한 뜻을 받아안은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이 태풍피해를 입은 황해남도의 여러 군에 달려나가 인민들과 고락을 같이하고 혈육의 정을 나누며 피해복구전투를 힘있게 벌린 가슴뜨거운 사실이 태여났다.

경애하는최고령도자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인민을 존중하고 인민들의 운명을 지켜주며 인민들의 리익과 편의를 최우선, 절대시하는것을 철칙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 혁명의 최고참모부인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이 피해지역 인민들속으로!

우리 당력사에 길이 남을 이 위대한 혼연일체의 화폭은 우리 당활동의 근본척도가 무엇이며 우리 인민이 어이하여 조선로동당을 어머니라 부르면서 운명도 미래도 그 품에 다 맡기고 사는가에 대한 명백한 대답으로 된다.

 

인민들이 아파할 때

 

그것은 참으로 가슴터지는 광경이였다.

푸른 하늘을 향해 곧추 자라던 강냉이대들이 금시 땅에 닿을듯 모두 한쪽으로 머리를 기울인채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포전의 흙이 보이지 않게 무성하던 검푸른 잎들은 실오리모양으로 갈가리 찢기워 맥없이 흩날렸다. 황금빛이 곱게 물들었던 벼포기들도 모진 광풍에 명줄이 끊긴듯 거멓게 죽어갔다.

지붕의 기와가 날아나고 아담한 울타리가 허물어진것도 지어 정든 살림집의 벽체들이 폴싹하니 무너져 한지에 나앉게 된것도 참을수 있었다. 하지만 봄내, 여름내 애지중지 가꾸어온 곡식들이 피해를 본 그 아픔은 금이야 옥이야 하던 자식을 졸지에 잃은듯 한 심정이였다.

올해에는 어떻게 하나 농사를 잘 짓자고 얼마나 아글타글 애써왔던가. 다수확농민이 되여 평양에서 다시 만나자고 하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정깊은 약속을 생각하며, 례년에 없는 대풍으로 당창건 75돐을 뜻깊게 맞이하며 쌀로써 당을 받들고 우리 혁명을 보위할 일념으로 낮이나 밤이나 드넓은 벌에 나가 살다싶이 한 황남땅의 농업근로자들이였다.

농사군의 진정은 땅에 거울처럼 비친다고 곡식들은 우적우적 소리를 내며 자랐다. 보기 드문 작황이여서 농장원들은 포전길에 나서면 그저 좋아 말없이 벙글거렸다.

그 소중한 기쁨과 긍지를 자연의 재난이 한순간에 휩쓸어간것이다.

제 집 형편에 앞서 담당포전의 피해상태를 깐깐히 살펴본 옹진군 긴고개협동농장 농장원들이 손맥이 풀려 무심한 하늘을 원망하고있던 지난 8월 28일 오후 그들앞에 배낭을 지고 작업복차림을 한 일군들의 대오가 나타났다.

그것을 본 농장원들은 제나름대로 속삭였다.

《어디서 지원자들이 온가봐요.》

《에그, 우리가 제구실을 못해 모두 바쁜 때에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페를 끼치게 됐구만요.》

바로 그때였다. 농장일군이 달려오며 목메인 소리로 웨쳤다.

《여러분, 경애하는원수님께서 보내주신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이 왔습니다.》

순간 농장원들은 모두 굳어졌다. 그날 아침 신문과 방송을 통하여 경애하는원수님께서 황해남도의 태풍피해복구사업에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을 보내라고 하시였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지만 이처럼 많은 일군들이 달려올줄은 꿈에도 몰랐던것이다.

긴고개협동농장만이 아니였다. 옹진군 남해협동농장을 비롯하여 강령군과 벽성군의 태풍피해를 입은 여러 농장에도 경애하는 원수님의 높은 뜻을 받들고 달려온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이 도착하였다.

《이번에 당중앙위원회 각 부서에서 다 나왔답니다.》

《원 저런, 그러면 당중앙위원회가 통채로 우리 황해남도에 옮겨온셈이 아니요.》

여러 농장의 농장원들속에서 이런 뜨거운 속삭임이 하나, 둘 흘러나와 온 황남땅으로 속속 퍼져갔다.

하지만 그들은 다 알리 없었다. 경애하는원수님께서 태풍피해지역 인민들을 위해 얼마나 뜨거운 심혈과 로고를 바치시고 깊은 정을 기울이고계시는지.

바로 전날 우리 나라에 태풍8호가 들이닥치였을 때 경애하는원수님께서는 태풍이 지나가는 경로에 위치한 황해남도의 피해상황을 시시각각으로 알아보시였다.

도당위원장에게 전화를 거시여 현재 바람속도가 얼마이며 피해정도가 어떠한가를 료해하시고나서 전화를 끊으셨다가는 얼마 안 있어 또 송수화기를 드시고 도에서 피해가 제일 심한 군이 어디인가를 알아보신 경애하는원수님, 그러시고는 다시 해당 군들의 당책임일군들에게 전화하시여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구체적으로 물어보시고 대책을 세워주신 우리 원수님이시였다. 이번 태풍에 철탑들이 넘어졌다는 도당위원장의 보고를 받으시자 철탑이야 다시 세우면 되지 않는가고, 중요한것은 사람들이 상하지 않게 하는것이라고 하시였으며 도의 알곡생산계획수행을 근심하는 도당책임일군의 죄책감어린 아뢰임을 들으시고는 알곡생산도 중요하지만 기본은 인민들이 신심을 잃고 나앉지 않게 하는것이라고, 이런 때일수록 인민들속에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고 절절히 말씀하신 경애하는 원수님,

새날과 함께 시작된 그이의 은정깊은 전화는 한낮이 되도록 계속 걸려왔다. 무려 10여차례나 되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귀중한 전화말씀을 받아안으며 황해남도당 책임일군은 그이이시야말로 오직 인민, 인민밖에 모르시는 위대한어버이이시라는 생각으로 솟구치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였다.

하건만 인민을 위하시는 경애하는원수님의 열화같은 사랑과 헌신은 정녕 끝이 없었다.

그날 오후 태풍이 채 잦기도 전에 황해남도의 피해지역을 찾으신 경애하는원수님께서는 도당위원장을 현지에 부르시여 피해상황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시고나서 우리 당력사에 있어본적이 없는 특별조치를 취해주시였던것이다. 인민들이 어렵고 힘들 때 그들속에 깊이 들어가 고락을 같이하면서 힘과 용기를 주고 성심성의로 도와주는것이 우리 당이 응당 해야 할 최우선과업중의 하나이라고, 기쁠 때도 힘들 때도 언제나 인민들과 함께 있는 당중앙위원회가 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당중앙위원회 각 부서들이 황해남도의 농경지와 농작물피해복구사업에 모두 동원될데 대한 지시를 주신 경애하는원수님,

그이의 높은 뜻을 받들고 당중앙위원회의 각 부서 일군들은 그날 밤으로 가족들과 함께 태풍피해지역 인민들에게 안겨줄 지원물자를 마련하였으며 날이 밝자마자 이전날의 출근길을 바꾸어 황남땅의 피해지역으로 달려왔던것이다.

자나깨나 그리운 경애하는원수님을 몸가까이에서 모시고 사업하는 당중앙위원회 일군들과 함께 태풍피해현장에서 복구전투를 진행하는 농장일군들과 농장원들의 가슴은 세차게 높뛰였다.

새힘이 부쩍부쩍 솟구치고 마음이 든든해졌다.

하면서도 어떤 농장원들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어 자주 머리를 기웃거렸다.

어느 한 작업반 기술원은 함께 일하는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에게 슬그머니 물어보았다. 한개 작업반 기술원인 나도 얼마동안만 자리를 뜨면 숱한 일감이 쌓이군 하는데 군당이나 도당일군들도 아닌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이 이렇게 며칠씩 나와있으면 맡고있는 중요한 사업들은 다 어떻게 하는가고.

그러자 일군들은 빙그레 웃으며 말하는것이였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곳 인민들과 함께 태풍피해복구를 하는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사실 농장원들이 의아해하는것은 당연한 일이였다.

영광스러운 우리 당창건 75돐까지는 불과 40여일, 더우기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를 소집할데 대한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6차전원회의 결정이 채택된것으로 하여 온 나라는 불도가니마냥 끓어번지고있었다.

당창건 75돐 경축행사준비와 력사적인 당 제8차대회를 맞이하기 위한 긴장한 투쟁속에서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이 해야 할 사업은 하나하나가 다 매우 중요하고 방대한 사업이였다. 하지만 경애하는원수님께서는 그 모든 사업을 뒤로 미루고 피해지역 인민들부터 찾아가야 한다고 일군들에게 간곡히 당부하시였다.

인민의 리익과 편의를 떠난 당사업, 인민의 아픔과 불행을 외면한 그 어떤 정책적지도도 생각할수 없으시기에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인민을 위한 성스러운 투쟁의 제일선, 태풍피해복구현장에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이 남먼저 서도록 하신것이다.

경애하는원수님께서는 뜻밖의 재난을 당한 인민들이 맥을 놓을세라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을 현지에까지 보내주시고 그들의 활동정형도 수시로 알아보시며 세심히 지도해주시였다.

그로부터 며칠후 옹진군과 강령군, 벽성군의 여러 농장에 나갔던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이 인민들과 고락을 같이하며 태풍피해복구전투에로 불러일으키는 사업을 성과적으로 마치고 돌아왔을 때 경애하는원수님께서는 일군들이 인민들속에 더 깊이, 더 가까이 들어가는것은 일시적인 사업이 아니라 우리 당이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정상적으로 진행하여야 할 사업이라는데 대하여 간곡하게 가르치시였다.

지난 9월 3일, 그날은 우리 나라에 태풍8호에 이어 태풍9호가 덮쳐든 날이였다.

온 나라에 태풍경보가 울리고 수도의 거리에도 오가는 사람 한명, 차 한대 찾아볼수 없었던 바로 그 시각에 모질게 불어치는 비바람과 폭우를 뚫고 힘차게 전진하는 뻐스행렬이 있었다.

황해남도의 태풍피해지역으로 또다시 진출하는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이 탄 뻐스들이였다.

그리하여 옹진군 만석협동농장, 장송협동농장과 강령군 금정협동농장, 금동농장, 평무농장, 벽성군 월답협동농장, 대죽협동농장을 비롯한 여러 농장에도 당과 인민이 하나가 된 혼연일체의 감동깊은 화폭이 펼쳐졌다.

경애하는원수님께서 보내주신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이 우리 농장에도 왔다고 기쁨을 금치 못하는 농장일군들과 농장원들의 모습을 보는 일군들의 가슴은 뜨거웠다.

인민들이 아파할 때!

좋은 날, 보통때보다도 바로 그러한 때 친아버지, 친어머니의 모습으로 어려움을 겪는 인민들가까이에 있으면서 고락을 같이하고 불편과 고통을 한시바삐 가셔주는것이 우리 혁명의 최고참모부인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의 첫째가는 임무이며 또한 그것은 인민의 리익과 편의를 최우선, 절대시하는 위대한조선로동당의 고유한 당풍이고 참된 인민의 나라의 고귀한 국풍이라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숭고한 뜻을 일군들은 심장깊이 아로새기였다.

 

인민이 드리는 고마움의 인사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를 비롯한 각 부서 일군들이 피해지역 인민들과 고락을 같이한 기간은 길지 않다. 이 나날 다른 사회에서라면 천년을 함께 산대도 다 나누지 못할 진하고도 깊은 정이 혁명의 최고참모부 일군들과 평범한 농장원들사이에 뜨겁게 오고갔다.

강령군 쌍교리는 강령반도의 남쪽끝부분에 자리잡고있다. 나라의 한끝에 있는 농촌마을이여서 이곳 주민들은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이 도의 태풍피해지역으로 파견되여온다는 소식을 듣고도 우리 마을에까지야 어떻게 오랴 하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일군들은 왔다. 그들은 작업반탈곡장에 배낭을 벗어놓자마자 일감부터 찾았다.

《작업반장동무, 어서 작업지시를 주십시오.》

이 말에 오랜 실농군작업반장도, 반장일을 갓 시작한 처녀작업반장도 어쩔바를 몰랐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포전에서 만난 농장원들도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 존엄높은 당중앙위원회의 일군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수 없었던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순간이였다. 마치 농촌마을에 태를 묻은듯 흙묻은 지게도 선뜻 지고 이야기도 이 고장 토배기들처럼 구수하게 하며 특히 남녀로소 누구를 막론하고 혈육처럼 대하는 일군들의 소탈한 모습이 삽시에 농장원들을 끌어당긴것이다.

마음이 즐거우니 일손들에 번개불이 일었다. 강령군 인봉협동농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제2작업반에서는 첫날 시간당 작업실적이 두배로 뛰여올랐다. 손맥을 놓고 나앉았던 농장원들이 성수가 나서 일하는 모습에 작업반장은 흐뭇함을 금할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저렇듯 땀을 바치는 일군들의 숙식조건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일군들은 불편한 잠자리도, 소박한 식사도 허물하지 않았다. 도리여 자기들이 집에서 정성껏 마련해온 가지가지의 생활필수품들을 한아름씩 안겨주었다. 그와 같은 화폭은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이 피해복구전투에 진입한 모든 농장마을에서 펼쳐졌다.

그날 밤 농장원들은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경애하는원수님께서 우리들을 여기에 보내주시였다고, 지금 이 시각도 우리 원수님께서는 태풍피해지역 인민들때문에 마음을 놓지 못하고계신다고 하던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의 이야기가 귀에 쟁쟁히 울려와서였다. 흐르는 눈물속에 뒤척이다가 끝내는 토방에 나와 경애하는원수님께서 계시는 평양의 하늘을 우러르며 동터오는 새날을 맞이한 농장원들도 있었다.

벽성군 서원협동농장 제5작업반의 한 농장원은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이 지난날 잘못 살아온 자기를 꾸짖을 대신 억수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담당한 포전의 강냉이가을을 도맡아해주고 혁신자농장원들과 차별없이 지성어린 물자까지 안겨준데 대하여 고마움을 금치 못하여 인생의 새 출발을 결심하였다.

옹진군 남해협동농장 제5작업반 2분조의 녀성농장원은 남편이 중병을 앓고 생활이 어려운 속에서도 농사일에 뼈심을 바쳐온 실농군이다. 너무도 소박한 자기 집에 당중앙위원회 일군이 찾아와 집형편을 알아보며 따뜻이 고무해줄 때 그는 많은 시련을 이겨오며 참고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이 피해복구전투에 참가한 후 농장원들속에서는 포전으로 나가는 출근시간이 앞당겨지고 년로보장을 받은 사람들도 경애하는원수님의 사랑을 어찌 앉아서 받을수 있겠는가고 하며 저마다 포전으로 달려나왔다.

피해복구현장에는 혁명적열기와 랑만이 차넘쳤다.

사실 많은 농장원들이 자기들은 사시장철 해온 농사일이지만 이런 일을 자주 하지 않는 일군들이 몹시 힘들것이라고 걱정하였다. 하지만 일군들은 그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얼마나 걸싸게 일하는지 작업이 한창일 때에는 누가 당중앙위원회 일군이고 농장원인지 가려보기 힘들 정도였다.

일할 때는 온몸에 흙탕칠을 하고 마대며 질통을 지고 뛰여다니는 일군들이 휴식할 때면 농장원들과 함께 강냉이짚을 깔고 앉아 구수한 이야기판을 펼쳤다.

옹진군 만진농장에 나간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은 경애하는원수님께서 은파군 대청리를 찾으시였을 때 그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험한 진창길에 첫 자욱을 내시며 가신 사실과 그곳 농장원들이 허물없이 드리는 말씀도 다 들어주시고 살림집설계를 일군들이 아니라 농장원들이 심사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신 은정깊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너무도 좁고 험한 길이여서 우리 원수님의 승용차가 논판에 빠진 사실도 이야기하였을 때 여기저기에서 흐느낌소리가 울려나왔다.

농장원들은 앞을 다투어 목메인 소리를 터쳤다.

《우리같은 농사군들이 뭐라고 우리 원수님께서 그토록 로고를 바치신단 말입니까.》…

인민들이 제일 좋아하고 제일 감동깊어하는 이야기는 경애하는원수님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이께서 걸으시는 인민을 위한 사랑과 헌신의 길에 대한 이야기를 가슴에 새긴 농장원들은 어서빨리 피해복구전투를 끝내여 경애하는원수님께 기쁨을 드리자고 하면서 한사람같이 떨쳐일어났다.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이 파견된 농장, 작업반의 모든 포전들이 그대로 피해복구전투장인 동시에 화선식정치사업마당이였다.

실천행동으로 당사업의 본보기를 가르쳐준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에게 농장 초급당일군들은 절절히 말하였다.

《이번에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은 저와 같은 농장일군들이 10년동안 해도 못다하였을 사상사업을 다 해주고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이 보여준 모범을 본받아 농장원들속에 깊이 들어가 실효성있는 정치사업을 벌려나가겠습니다.》

어떤 날의 쉴참에는 흥겨운 오락회도 벌어졌다.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이 스스럼없이 일어나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농장원들은 나라 한끝에 사는 자기들이 경애하는원수님을 몸가까이에서 모시고 일하는 일군들의 노래를 직접 듣고 그들과 함께 2중창도 하는 이런 일을 상상조차 할수 없었다고 하며 희한함을 금치 못했다.

당중앙위원회 일군들과 한마디 말이라도 나누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싶어 일군들이 일하는 포전에 스스로 찾아와 일손을 잡는 로인들도 있었다.

당중앙위원회 일군들과 피해지역 인민들사이의 믿음과 정이 나날이 깊어지던 지난 8월말 강령군 부포농장 제6작업반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태풍으로 작업반구역에 있는 해안방조제보호뚝이 허물어졌는데 이곳 작업반에서 일하던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은 그것을 보수할것을 결심하고 달라붙었다. 일군들이 휴식시간마저 바쳐 질통을 지고 흙투성이가 되여 일하는 모습을 본 작업반원들은 고맙기도 하고 몹시 미안하기도 하였다. 문득 작업반 당세포위원장의 뇌리에 아침에도 자기들과 한밥상에 마주앉아 소박한 음식을 든 그들이 얼마나 힘들랴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하여 그는 점심식사만이라도 따로 마련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비상사건으로 될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부포농장에 나온 성원들을 책임진 일군이 그 일을 알게 되였던것이다. 다 해놓은 음식인데 제발 한번만 대접하게 해달라고 사정하는 농장원들에게 일군은 말하였다.

《우리가 딴가마밥을 들면 인민들과 고락을 같이하라고 하신 경애하는원수님의 뜻을 어기는것으로 됩니다.》

해안방조제보호뚝보수전투로 많은 땀을 흘린 일군들의 심정도 마찬가지였다. 따로 마련한 음식을 마다하고 삶은 풋강냉이로 끼니를 대신하는 그들을 보며 농장원들은 뜨거운것을 삼키였다.

농장원들에게는 사소한 부담도 주지 않으면서 그들의 편의를 위한 일을 하나라도 더 찾아하기 위해 애쓴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이다. 농장원들의 집집을 돌아보며 터갈라진 방바닥도 수리해주고 날아간 기와대신 새 기와도 씌워주었으며 태풍에 넘어진 울바자도 번듯하게 세워놓았다.

벽성군 서원협동농장 제3작업반에 나간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은 자기들이 도착한 날에 그곳 작업반의 한 농장원의 딸이 병으로 사망한 사실을 알고 즉시 찾아갔다. 친혈육의 심정으로 가족들을 따뜻이 위로해준 일군들, 이 사실을 안 농장일군들과 농장원들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보내주신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이 다르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의 불행을 제일처럼 가슴아파하고 쓰러질세라 힘과 용기를 주는 이런 당일군들과 함께라면 그 어떤 시련도 꿋꿋이 이겨내겠다고 감동을 금치 못하였다. 일군들은 특별히 마련해가지고 온 물자들과 함께 모든 농장원들의 집집에 새 벽지도 안겨주었으며 남편을 잃고 홀로 사는 녀성농장원의 집을 더 밝고 환하게 꾸려주었다.

강령군 부포농장 제2작업반에 나간 일군들은 마을앞으로 흐르는 시내가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물량이 많아지는 장마철이면 징검다리가 물속에 잠겨 오가는 사람마다 신발을 벗고 시내를 건느고있었던것이다. 하루에도 몇번 그곳을 오가야 하는 농장원들이 얼마나 불편할것인가. 이렇게 생각한 일군들은 시내가에 다리를 건설해주리라 마음먹었다.

이 소식을 듣고 많은 농장원들이 놀라와했다. 일군들이 떠날 날까지는 며칠 안 남았던것이다. 그 짧은 기간에 돌다리도 아닌 콩크리트다리를 건설할수 있겠는가.

그러나 믿기 어려운 기적이 소문없이 일어나는것을 농장원들은 고스란히 볼수 있었다. 피해복구전투를 하는 여가에 가물막이공정을 뛰여넘어 기초공사를 할수 있는 공법을 탐구하고 그것을 평양건축대학과 련계하여 과학성과 안전성을 확증하였으며 깊은 밤마다 우등불을 피워놓고 공사를 하고 농장을 떠나는 순간까지 일을 다그친 일군들,

하여 안전란간까지 세운 아담하고 번듯한 다리가 시내가에 일떠섰고 일군들은 농장원들의 불편을 또 한가지 덜어준 크나큰 기쁨을 안고 농장마을을 떠났다.

바로 그 다리로 농장원들이 메여지게 달려나오며 일군들을 바래웠다. 《동지들, 정말 고맙습니다.》…

인민들을 위하는 일군들의 지극한 정성이 깃든 시내가의 작은 다리, 그것은 정녕 우리 당과 인민의 마음을 더욱 튼튼히 이어주는 혈연의 피줄기였다.

아침저녁 그 다리를 건너 일터로 오가는 농장원들은 동네방네 소리높이 자랑하리라. 우리 마을에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이 놓아준 다리가 있다고, 그 다리는 나라 한끝에 사는 수수한 농촌마을의 집집도 당중앙위원회뜨락에 있음을 말해주는 소중한 증견물이고 우리모두를 한품에 안아주는 경애하는원수님의 따사로운 손길이라고.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이 피해복구현장을 떠나던 날 모든 농장에서 일군들과 농장원들이 떨쳐나왔다.

낮에는 포전에서, 밤에는 가정에서 뜻과 정을 나누며 친부모, 친형제처럼 가까와진 일군들이 탄 뻐스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농장원들과 주민들은 모두 와 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멀리까지 따라섰다.

《경애하는원수님께 우리 황해남도인민들때문에 더는 걱정하지 마시라고 꼭 아뢰여주십시오.》

《우리는 경애하는원수님만을 굳게 믿고 애국의 한길을 꿋꿋이 가겠습니다.》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을 바래우는 곳마다에 펼쳐진 농장원들의 눈물의 바다, 그것은 인민을 제일 아끼고 사랑하시며 전당의 일군들을 인민에 대한 멸사복무정신의 체현자, 헌신적복무자로 키워주고 이끌어주시는 경애하는원수님에 대한 다함없는 감사의 정, 원수님 따라 이 세상 끝까지 갈 굳은 맹세의 분출이였다.

 

*                *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이 황해남도의 태풍피해지역에 달려나가 피해복구전투를 벌린 기간은 비록 짧았지만 그 한초한초는 보통날 당정치사업의 백배, 천배에 달하는 위력을 발휘하였다.

이 나날 피해지역 인민들은 어려울수록 더 따뜻이 품어주고 운명도 미래도 다 맡아 안아주는 위대한 어머니당의 참모습을 가슴깊이 새기였으며 우리 혁명의 최고참모부인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은 우리 인민이 얼마나 충성스럽고 애국적이며 강의한 인민인가를 더 잘 알게 되고 이런 충직한 인민의 심장을 울릴 때 이 세상 넘지 못할 난관이 없다는것을 절감하였다.

그렇다.

경애하는원수님께서 계시여 엄혹한 시련속에서 인민들도, 일군들도 다같이 성장하였으며 우리 조국의 불패의 힘인 당과 인민의 혼연일체, 위대한 일심단결은 더욱 굳게 다져졌다.

《우리 원수님 보내주신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이 왔다!》

이것은 우리 당력사의 갈피에 새겨진 한토막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민을 끝없이 사랑하시는 위대한령도자, 자애로운어버이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불행과 아픔을 겪는 인민들곁으로 더 가까이, 더 뜨겁게 다가가는 혁명의 최고참모부 일군들의 발걸음소리는 앞으로도 계속 우렁차게 울릴것이다.

 

본사기자 허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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