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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3월의 함성, 희망을 꽃피우다.

전남동부보훈지청 선양팀장 정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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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진
기사입력 2021-02-26

 

 



돌아오는 월요일은 제102주년 3ㆍ1절이다. 3ㆍ1운동이 일어났던 102년 전 우리민족은 한 세대가 넘는 기간 동안 가혹한 착취를 당했던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기에 처해 있었다.

일제는 조선총독부라는 절대적 권력 통치기구를 중심으로 식민 지배체제를 구축하여 무단통치로, 때로는 문화정치라는 기만적 회유를 통해 세계 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악랄한 한민족 말살정책을 자행하여 우리 민족의 자주적 성장과 발전기회를 박탈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철저한 감시 속에서도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은 본인과 가족의 안위를 뒤로한 채 국내․외에서 분연히 떨쳐 일어나 민족의 주권 회복 열망을 세계만방에 알렸다.

특히 1919년에 일어난 3ㆍ1운동은 일제로부터 강제로 빼앗긴 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선열들의 거족적이며, 평화적 항일 민족운동이었다.

3ㆍ1운동은 대내적으로는 주권 회복을 목적으로 민족의 대동단결을 이루는 계기가 되어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가져왔으며, 대외적으로는 아시아에서 침략과 만행을 일삼는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엄중한 경고와 함께 당시 제국주의 침략을 받던 약소민족에게 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는 큰 계기가 되었다.

우리 민족의 독립전쟁은 의병에서 독립군을 거쳐 한국광복군에 이르기까지, 빼앗긴 국권을 되찾고 자주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쉼 없이 전개되었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등 그 치열했던 항일 무장투쟁의 과정에는 수많은 독립전쟁의 영웅들이 계셨으며, 그분들 중에는 농민과 여성에 이르기까지,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수많은 독립군들이 계셨기에 선열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은 마침내 거대한 횃불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 자유인으로 싸우다 죽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다는 한 의병의 이야기는 독립은 목숨에 비할 수 없는 큰 가치였으며, 애국애족(愛國愛族)을 실천하셨던 선열들의 생애와 정신을 보여주는 일화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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