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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북기40]북한, 계급이 없는 인민군대

“조국이 지금까지 없애려고 수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이 계급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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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Kang 재미동포
기사입력 2015-06-27

재미동포 CJ Kang께서 2014년 9월 3~11일 북한을 방문하였습니다. 
NK투데이는 필자와 협의 아래 방북기를 연재합니다. 
필자의 승인 아래 원문의 표현 가운데 일부를 한국 실정에 맞게 수정했습니다. 
외부 기고는 본사 입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원산으로 달리는 차에서 창밖에 펼쳐지는 풍경이 참으로 아름답다. 산세가 좋다거나 기암절벽이 있어서가 아니라 풍요로운 들판에 누렇게 곡식이 익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나를 흐뭇하게 한다. 석 달 동안 비 한 방울 안 왔다는데도 이렇게 농사가 잘 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주로 논에서 익어가는 벼의 모습이 많지만 여기저기 옥수수 밭도 보이고 과수원도 있는데다 마을이 여기저기 나타나기에 사진기의 셔터를 계속 눌러대었다. 




넓지 않은 평원이지만 제법 한참 동안 농촌의 풍경이 계속되었는데 차는 어느새 좀더 산이 높아지는 지역으로 들어선다. 한참 아까부터 길가에 코스모스들이 보여서 달리는 차안에서 그걸 찍다가 결국엔 코스모스들이 무더기로 피어난 곳에서 운전기사에게 차를 좀 세워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코스모스, 초등학교 시절에 학교 부근의 포장되지 않은 신작로 가장자리에 학교에서 단체로 코스모스 꽃씨를 심게 한 적이 있었다. 꽃씨만 뿌렸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그 코스모스는 해마다 가을이 되면 맨 먼저 우리들에게 계절이 바뀌어가는 것을 알려주는 꽃으로 다가와 주었다. 

우리들 모두 코스모스에 대한 추억 한 두 가지 없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 젊었던 그 시절의 첫사랑과의 추억 한 페이지에 남아있을 수도 있고 지금 함께 살아가고 있는 배우자와의 옛 추억 한 모퉁이에 코스모스가 자리하고 있을 수도 있으리라. 우리들 모두가 사랑하는 그 꽃이 이곳 북부조국의 길가에도 무수히 피어나 나그네의 눈길을 이끌더니만 결국엔 나를 차에서 내리게 만든 것이다. 코스모스를 온전히 사진으로 담는 모습을 보고는 안내원 김미향 동무가 날더러 그 곁에 서게 하여 사진을 찍어준다. 








다시 차로 돌아와 출발하면서 노길남 박사님에게 왜 박사님은 코스모스 사진을 찍지 않는가고 물어보니 허허 웃으시며 이미 60여 차례 북부조국을 찾으면서 자신도 처음엔 나처럼 그렇게 수없이 코스모스를 사진에 담았다고 말해준다. 

하긴 나도 북부조국을 자주 찾게 된다면 이 코스모스도 점점 무덤덤해져서 사진으로 남기려 하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 그렇지만 이렇게 무더기로 꽃을 피워내는 것을 볼 때마다 지나간 옛 추억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그대로이지 않을까? 



이 길가에 코스모스 꽃씨를 뿌리고 이렇게 잘 가꾼 사람은 누구일까? 이곳 북부조국의 피어나는 소년소녀들일까 가까운 동네의 인민들일까 아니면 평생을 도로의 안전과 조경을 위해서 일하는 순박하고 고운 마음의 동포들일까? 북부조국 산하의 풀 포기 하나 꽃 송이 하나가 저 들판에서 익어가는 곡식과 마찬가지로 내게 소중하게 다가온다.

달리는 차는 주변 경관이 빼어나다 싶은 곳에서 잠시 큰 길을 벗어나더니 휴게소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이곳은 내가 25년 전에 금강산을 찾을 때 미주동포 일행들과 함께 들러 차 한 잔을 대접받았던 곳이라 옛 추억이 떠오른다. 







그때의 추억을 더듬으며 사진을 찍으면서 살펴보니 주변엔 대형 관광버스가 서있고 그 곁엔 우리가 타고 온 차와 비슷한 모습의 승용차가 서 있는데 나이가 마흔 정도 되어 보이는 인민군 장교 한 사람이 그 승용차에서 나와선 바람을 쐬고 있었다. 

그 일은 여기서 벌어졌다. 노길남 박사님이 어딘가 돌아보고 와서는 그 인민군 장교의 계급장을 보고는 대뜸 질문하기를 “계급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은 것이었다. 장교는 갑자기 낯선 사람으로부터 질문을 받아서였는지 아무 말도 않고 멍하니 노 박사님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박사님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그 차의 뒷문을 열고는 들여다보더니만 “아니, 우리 차가 아니구나”라고 하신다. 그러니까 박사님은 그 차가 우리들이 타고 온 차인줄 알고는 차 곁에 서있던 그 장교에게 말을 걸었고 차 문을 열기까지 했는데 결국은 남의 차의 문을 열고 만 것이었다. 

당황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박사님이 하는 동안에도 그 장교는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이 무덤덤해하더니만 바로 차를 타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 모습을 나와 함께 몇 미터 거리에서 지켜본 우리 운전기사 리영호 동무가 기어이 한마디를 하는 것이었다.

“우리 조국이 지금까지 없애려고 수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이 계급사회였습니다. 계급은 해방투쟁의 대상이었습니다. 이제 계급이란 단어는 책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사라졌는데 박사님이 그 장교에게 계급이 무엇이냐고 물어본 것은 엄청난 실례를 한 것입니다”라고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럴 듯하다. 거기다 남의 차문을 열기까지 했으니 그 장교로서는 정말 황당한 일을 당한 것일 수도 있으리라. 

“그렇다면 인민군대에선 계급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무엇이라고 부릅니까?”라고 내가 묻자 “우리 인민군대에선 ‘군사칭호’라고 부릅니다”라고 대답해준다. 그러니까 인민군대에서의 계급장은 단순히 군사칭호일 뿐이란 것이다. 

군대라고 하면 누구나 당연히 상관과 부하의 등급이 있는 곳이고 명령과 복종의 체계가 서 있는데 그것을 계급이란 말로 우린 오랫동안 사용하면서도 아무런 깊은 생각이 없이 지내왔다. 우리가 군대에서 계급을 별 생각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군대가 계급에 따라 어떤 신분제도처럼 상관이 하급자에게 함부로 굴면서 어느 정도 인권을 침해하는 것까지도 모두 은연중 수용하였고, 그것이 남한에서 오랜 세월 동안 군대라는 것이 하급병은 상관으로부터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하는 것도 당연한 것처럼 여기게 된 배경이 아닐까? 그래 군대에서 온갖 기합과 욕설이 난무하고, 구타로 인해 극도로 인권이 침해당하고 끝내 죽음에 이르는 일까지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계급이 양반과 상놈 시절의 계급사회의 계급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런 계급 자체가 일제의 잔재가 아닌가?



아까 만났던 그 장교는 군사칭호가 상좌로 일반적으로 ‘상좌동지’로 부르며, 보통 연대장을 맡는다고 하였다. 리영호 운전기사 동무로부터 들은 인민군대의 군사칭호에 대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병사들의 경우에는 처음병사, 초급병사, 중급병사, 상급병사로 올라가고 그 위에 하사, 중사, 상사, 특무상사가 있다. 군관의 군사칭호는 소위, 중위, 상위, 대위로 올라가고, 그 위에 남녘의 영관급인 소좌, 중좌, 상좌, 대좌가 있고, 장성급에 올라가서는 소장(큰별 하나), 중장(큰별 둘), 상장(큰별 셋), 대장(큰별 넷)이 있고, 그 위에 차수, 원수, 대원수로 구성되어 있다.

CJ Kang

미국 시애틀에서 <사람사는 세상 시애틀 한마당>(hanseattle.com)을 공동운영하고 있으며 <사람사는 세상을 위한 시애틀 모임> 대표를 하다가 현재 고문으로 있다. 또 유권자민주연대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원본기사:nk투데이(http://nktoday.tistory.com/1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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