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조선역사학회30차포럼, 지명선교수 '가노는 세계일주 전 대조선에 왔었다' 김일미 기자 2017.07.17 11:21


"대조선 강역 확인하고 결집된 서왜들은 임진왜란을 준비하고 있었다"

 

[홍익/통일/역사=플러스코리아 김일미 기자] 위대하고 찬란했던 대조선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대조선역사학회 30차포럼이 지난 15일 오후 2시 영등포 구국실천연합 강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특별강의는 본지 역사전문위원이자 한문화사업총단대표 조홍근교수의 '세계문자의 기원은 한배달조선 우리 글'과  대조선역사학회 공동위원장이자 대조선사연구회 회장 지명선교수의 '가노는 세계일주전 대조선에 왔었다'  라는 주제로 3시간 동안 강연했다.

 

▲ '가노는 세계일주전 대조선에 왔었다' 강의하는 지명선 교수     © 김일미 기자

 

 

다음은 강의 핵심요약과 영상이다.

 

2부특강영상:  '가노는 세계일주전 대조선에 왔었다'

(https://youtu.be/Gpl9JBRTfBw)

 

1. 서구의 신세계발견고려때 십자군전쟁..  고려말 홍건적, 왜구의 소탕..  태조때 사해통일·천하통일·천하일가 이룩, 태종때 정화에 의한 3000여번국 통치, 세종때 대마도정벌.. 4군6진설치로 북쪽영토 확장이후, 서구의 신대륙발견, 서구의 세계일주로 이어지는데, 이는 서왜의 재결집 및 조선에로의 정탐을 의미한다.

 

스페인 무적함대 침몰, 영국이 새로운 강자ㅡ 서왜, 왜의 60주 지역통일과 서로 연관이 있으며 이와 더불어 예수회가 참여한 임진왜란을 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한편 마젤란 일행은 지구일주를 동에서 서로 하였는데, 필리핀에서 원주민과의 마찰로 마젤란은 죽고, 엘가노가 세력을 모아 스페인본국으로 귀환한다.

    

2. 대조선의 사해관리대조선은 천지창조이후로  역대 대대로 사해를 지배하면서 사해의 난들을 정벌해 왔다. 특히 신라/발해 강역은 역시 사해 전체이고,  발해는 바이킹과 오버랩되며 위치, 시기면에서 매우 유사하다. 고구려와 발해의 시기는 동로마의 시기와도 겹친다.  고려/몽골의 강역도 역시 사해전체로 몽골은 거의 유럽쪽으로 추정되는데,  징키스칸이 고려에서 1만리 서쪽으로 가야 만날 수 있었고, 마르코폴로는 아시아에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몽골은 전형적인 색목인이라는 것에서 기인한다.

    

대조선/서구에서도 그 강역이 사해 전체인데, 특히 정화의 7번에 걸친 세계정벌로서 서구를 완전 대조선에 귀속시켰다.  그동안 수준높은 조선문화를 서구에 제공함으로서 문화낙후지역을 크게 업데이트했는데(서구 르네상스 중흥기) 그것이 오히려 왜침의 화근이 되었다.

 

3. 가노의 삼해일주 진실

포르투갈인 가노는 (조선을 방문 후 황제에게) 품청(稟請 ) 後 동으로 돌아 일주하고 왔는데 조선황제는 그에게  선물을 하사했다. 여기서 품청은 바다 지배권자의 출입허락을 의미한다. 조선임금을 찾아와 인사(조알)하고 삼해일주 허락을 받아 일주하고 선물을 받았다. 이는 지구(사해)를 거의 두바퀴 돈 셈이다. 일시는 조선황제 1505년이전이 확실하다.  서양지도에 신대륙이 1508년이 되어야 나오기 때문이다.    

 

4. 결론

1) 품청(稟請 )을 한다는 것은 오대양의 지배권자의 출입허가와 같은 것으로, 그 당시 지배권자는 지구천자인 대조선 황제가 틀림없다.

    

2) 가노가 일주를 하고 나니, 왕은(대조선황제)는 그에게 선물을 하사했다. 그런데 그 왕은 대조선연대로 보면 다름 아닌 연산군이었다. 대조선황제의 연호나 연대는 명·청의 것으로 조작된 것이며, 짜맞춘 정황이 있다.

    

3) 일주하는 방향과 시기를 보면, 서에서 동으로 돌고  돌아갔는데, 그냥 본국으로 간 것이 아니라, 조선을 두 번째 방문하고 돌아갔다. 그 시기는 1505년 이전이 확실시되는데, 서양의 세계지도를 보면 그 이후부터 신세계를 표기하기 때문이다.  반면 조선의 고지도는 예나 그 당시나 항상 신세계를 포함한다.

    

4) 하사한 선물은 소지구(세계지도) 로서, 지구본스타일 또는 평면지구스타일(천하도)이다.  세계지도 제작술은 그당시 대조선이 최고였다. 가노가 일주하고 나서야 서양에 실질적인 세계지도가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벌써 조선의 세계지도가 이미 있었다는 것은 세계지도 최초 제작자가 조선인이란 의미이고, 지구일주 최초자가 서구인이 아니라, 조선인이라는 사실이다.

    

5) 서구인의 지구일주는 조선에서 보면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허나 서구의 입장에서는 일주하면서 조선을 정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대조선으로 가는 루트를 발견한 것이고 조공로를 최종 확인한 셈이다. (하사를 했다는 것은 조공을 다녀왔다는 것을 의미함.) 전 대조선의 강역을 확인하고 결집된 서왜의 집단들은 최종 임진왜란을 준비하고 있었다.

 


기사입력: 2017/07/17 [11:21]
최종편집: ⓒ 플러스 코리아(Plus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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